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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후기/2004년

저 새싹처럼 일어나라(웅석봉 산행기)

by 에코 임노욱 2016. 5. 19.

저 새싹처럼 일어나라(웅석봉 산행기)

- 구름모자 -


 이른 아침 산속의 공기는 상쾌하다. 해발 육백미터가 다되는 밤머리재는 찻길이 뚫려있다고는 하나 넘어오는 바람을 맞아보면 깊은 산속에서나 느낄 수 있는 싱그러움이 느껴진다.
 곰바위봉 너머로 밝아오는 여명을 즐기며 도심의 탁한 공기에 찌든 몸속으로 맑고 투명한 새벽공기를 폐부 깊숙한 곳까지 집어넣기 위해 심호흡을 한다.
 첫 오름길은 제법 거친 호흡을 해야 하는 나무계단 길이다. 길 양쪽엔 오동통한 간난아이 볼처럼 곧 터질 것만 같은 철쭉꽃망울이 군락을 이루고 있지만 키 큰 참나무 숲에 덮여있어 크게 주목을 받고 있지는 못하다. 그런 길은 해발 856봉우리까지 줄 곧 이어진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해는 이미 동쪽 능선위로 올랐고, 그만큼의 경사가 있으니 자연 등줄기엔 땀이 베이고 이마엔 송글송글 굵은 방울이 맺힌다.
오름길은 아직 봄꽃들의 축제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벌써 봄의 중간에 와있는 듯 주위는 온통 새 생명들의 합창 소리가 가득하다.
봄꽃의 전령사인 진달래가 듬듬이 만개해 있고, 등산로변 주위를 자세히 보면 지난 가을 떨어진 낙엽속이나, 다소곳이 쓰러진 말풀 잎새 사이로 어린순이 가녀린 줄기를 내밀어 제비꽃이며, 양지꽃, 구술붕이꽃들이 앙증스럽게 꽃잎을 열어 우릴 쳐다보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 가슴에 찡하게 와 닿는 건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등산로에 막 올라오기 시작한 연녹색의 새싹이다. 그 어린 순을 쳐다보고 있으면 싱그러움보다는 가련함이 앞선다. 그 많은 세월 모진 사람들이 짓밟고 지나간 자리, 아니 또 짓밟혀야할 그 자리, 먼지마저 풀석풀석 일어나 청순함 보다는 한평생 두터운 멍울을 둘러쓰고 자라나야하는 그 자리에 이제 막 고개를 내민 저 새싹을 보면 우리내 민초들의 삶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저며 온다.
눈만 뜨면 쌈박질이나 해대는 저 정치꾼들의 놀음판에, 힘없는 민초들이야 죽든 살든 서로 저 잘났다고 우겨대는 저 삼류 난장판에, 장똘뱅이 흥정거리보다 더 비열한 저 아수라판 속에 천심만을 믿고 따르던 우리 민초들은 무슨 희망을 가지며 살아 왔을꼬?
그들이 그 숱한 쌈박질하는 동안, 내 앞에 큰 감 놓자고 등 돌리고 흥정하는 동안, 뒷돈 빼돌리고 음탕하게 웃음 지으며 악수하는 동안, 허리 한번 제대로 펴보지 못하고 한평생 일궈놓은 가업이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쓰러져가는 꼴을 쳐다만 보아야 했던 기업들은 얼마나 많은 눈물을 뿌렸던가?
저 비열한 정치꾼놈들이 만들어 놓은 그 법도 법이라며 잔인하게 약탈해 가는 돈 귀신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민초들이 죽어 나갔던가? 얼마나 많은 가족들이 생이별을 겪었던가? 얼마나 많은 우리의 아들딸들이 거리로 내 몰렸던가? 그들은 또 얼마나 많은 범죄자를 양산해 내었던가? 인간에게 가장 숭고해야할 순결을 끼니 하나 때우자고 값도 없이 헐값에 팔아야 했던 우리 형제자매들은 얼마나 한맺힌 피눈물을 쏟아 내었던가?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마냥 울고 있지만은 않는다. 분연히 일어나 당당하게 맞설 것이다. 한 평생을 그 자리에서 잔인하게 짓밟히고 짓이겨도 다시 일어서리라. 그들에게 힘이 없다고 얕보지 마라. 그들은 아직도 살아있다. 아직은 힘이 없어 짓눌려 있어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살고 있지 않은가? 아직도 정을 끊지 않고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은가?
이 거칠고 폴폴 먼지만 일어 황량하기 그지없는 산길 위에 피어나는 저 새싹을 보면 제몫 찾기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정치나부랭이들이 권모술수에 속이 썩어 문드러져도 다시 새순을 피워 올리는 민초들의 삶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시려온다.
꽃은 화려함이라도 있다지만 한디에서 주목받을 만한 초라한 꽃 한 송이 피워내지 못하여 벌 나비마저도 외면하는 저 잡초들이야 말로 우리가 배워야할 삶의 지혜인지도 모른다.
첫 번째 쉼터인 헬리포트에서 지난밤 술기운을 털어내며, 아니 저 아래 세상 더러운 이야기들을 뱉어내며 한가한 시간을 보낸다.
다시 일어나 걷는 길은 한가롭고 여유롭다. 급한 오름길도 없을 뿐 아니라 중간중간 트이는 조망터에서 천왕봉의 뒷모습을 보며 오르면 된다.
너도밤나무가 겨울을 감싸고 있던 끈끈이를 털어내며 새순을 피우고, 길 섶 비탈엔 날렵하게 피어난 얼레지무리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 대목에서는 복잡하고 무거운 생각들을 버리고 여유를 가지고 한가하게 오를 일이다. 한 굽이를 돌때마다 변화하는 전망과 새 생명의 향기를 음미하며 오르면 훨씬 더 값진 산을 만나고 올 수 있다. 굳이 목적지만 생각하며 허겁지겁 오르는 일에만 몰두하게 되면 고통만 더할 뿐더러 산을 다니는 의미가 축소되기 때문이다.
서두르면 어차피 실수하거나 수선스럽고 어지러진다. 그리고 뒤끝이 개운하지 못하다. 편안히 마음 놓을 곳을 찾아왔다가 오히려 더 번잡하여 평상심만 잃고 간다면 오히려 집에서 차분히 TV나보며 누워있느니만 못하다.
한 대목을 잠깐 오른다 싶으면 곧 왕재다. 선녀탕에서 숯가마터를 지나 된비알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곳이다. 숯가마터가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불과 몇 십년전까지만 해도 이곳이 얼마나 많은 산림이 우거져 있었는지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세상의 부조리한 관리들을 피해 이 산속으로 숨어들었던 사람들이 어디 그들뿐이었으랴 만은 주어진 삶을 한탄만하지 않고 이 적막한 곳에서도 가족을 위해 그 버거운 삶을 살아온 그들의 희생도 한번쯤은 생각해 볼 일이다.  
한 무리의 등산객이 들이 닥친다. 이 계절 새벽부터 감시망을 뚫고 들어온 그들과 동질감을 느끼며 자리를 턴다.
이후 달뜨기능선 삼거리까지는 제법 오르막이 있으나 중간중간 터져 있는 조망터가 있어 다리쉼과 더불어 산천 구경하듯 쥐위를 둘러보며 오르면 된다. 북쪽으로는 산청읍내와 경호강, 지곡사 들머리가 눈에 들어오고, 남쪽으로는 황금능선 아래로 내원골과 장당골이 숨어 덕천강으로 흘러나오고 우리가 내려서야하는 홍계리 동촌마을이 조그만 점으로 내려다보인다. 그리고 천왕봉은 중봉과 새봉, 왕등봉을 몰며 처음부터 줄곧 우리 뒤를 쫓아오고 있다.
그 옛날 곰이 떨어져 죽었다는 능선을 그렇게 쉬엄쉬엄 오르다 보면 너른 둔덕같은 달뜨기 능선 삼거리를 만난다.
이른 새벽에 시작해서인지 빠른 걸음도 아니었는데 시간이 여유롭다. 남쪽으로 거의 일직선으로 뻗어 내린 달뜨기 능선은 여기서 보면 봉우리들이 제법 기운차게 솟아있어 긴 시간을 예상하게 되지만 막상 그 능선위의 길을 따라가 보면 오름길이란 거의 찾아 볼 수없다. 그만큼 유순하고 편안한 길이다.
멀지 않은 과거에 총칼로 서로를 겨누고 있던 동족상잔의 비극 속에서도 저 능선 너머로 달이 떠오르면 새재에 숨어 있던 파르티잔들이 저 아래에 두고 온 고향과 가족들을 생각하며 눈물지었다던 그 달뜨기능선에는 지금 막 연녹색 신록이 그리움처럼 피어오르고 있다.
나무껍질과 솔잎으로 주린 배를 채우고 보리쌀 한줌에 목숨을 걸어야 했던 그들은, 광목천 한자락으로 발싸개를 한 채 한겨울 눈 속을 헤매고 다녔던 저들의 꿈과 이상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이념의 의미도 알지 못하고 남편의 손에 이끌려 지리산으로 들어왔던 젊은 아낙들은 어느 능선자락에서 숨을 거두었을까? 그들은 죽어서라도 영웅의 칭호를 받았을까? 그들도 이런 봄날의 느낌을 기억하고 있을까? 마지막 파르티잔이었다는 정순덕은 끝내 북으로 송환되지 못하고 인천의 달동네에서 쓸쓸히 마지막 생을 붙들지 못하고 떠나갔는데 그의 신념은 숨을 놓던 그 순간까지도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었을까?
내림길엔 청초한 각시붓꽃이 노란 검불사이에 제법 무리지어 피어 있다. 이 능선에서 가장 흔한 꽃이 이 꽃 아닌가 싶게 많이도 피어있다. 이른 봄의 느낌인지 몰라도 남색 꽃은 그들의 꿈인 듯 하고 노랑색 꽃은 그들의 그리움만 같다. 그렇게 그들은 달이 뜨는 밤이면 저 각시붓꽃처럼 반짝거리는 꿈을 심고 그리움에 사무치치 않았을까?
한 시간 정도면 달뜨기 능선에서 유일하게 조망이 트이는 전망바위가 나타난다. 뒤를 보면 어제 저녁을 눕혔던 밤머리재가 잘록하고, 웅석봉은 곰처럼 우직하게 돌아 앉자있다.
닥밭골로 뻗어나간 지능은 연녹색으로 봄 단장한 새색시 저고리 같고, 멀리 보이는 홍계리가 평화롭기 그지없다. 저렇게 평화롭기만 한 저 산속 동네가 무엇 때문에 피를 흘리며 싸워야하는 소용돌이에 휘말렸는지 이념의 세계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저 여기서 이렇게 쳐다보는 것처럼만 평화로울 수 있다면 이세상은 얼마나 좋을까?  
시간이 얼추 된 것 같아 점심을 푼다.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봄나물도 무치고, 남아있던 삼겹살이 불판에 올려지니 또다시 술이 들어간다.
오후부터 비가 내린다던 일기예보는 믿어달라는 듯 꾸역꾸역 구름을 모으더니 천왕봉을 살짝 감춰 놓아 포만감에 젖어 있던 우리를 바쁘게 한다.
닥나무가 많아 닥밭골이라 불렀다던 내가 알고 있던 지명은 사라진 채 지금 가진 지도에는 딱밭실골, 떡마실골이라 쓰여져 있다.
986고지를 지나 918봉을 다다르기 전 안부에 삼거리에 이르자 참았던 하늘에서 하나둘 빗방울이 들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닥밭골로 꺽었다.
내림길 역시 얼레지가 군락을 이루고 있고 급경사 끝머리에서 너덜강을 찾으면 이후는 길 잃을 염려가 없다.
계곡은 생각보다 깊다. 그도 그럴 것이 웅석봉 능선과 맞닿아 있는 달뜨기 능선 시점부터 918봉에서 꺾이는 능선까지 모두가 이 골짜기로 흘러드니 지리산국립공원지역에서는 벗어나 있다고 하나 지리산 계곡의 깊이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봄 가뭄이라 생각했었는데도 계곡은 상당히 많은 수량이 흐르고 있고, 군데군데 보기 좋은 소와 담이 펼쳐져 있는데다가 길섶엔 금낭화가 지천으로 피어있으니 이 계절에 찾아온 우리에게 감사하는 마음까지 들게 만든다.
웅석봉의 달뜨기능선에서 시작되는 지계곡과 닥밭골 본류가 만나는 삼거리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콘크리트 사방댐이 들어서고 있다. 지난여름 태풍이 쓸고 지나간 피해가 이곳에도 상처를 안겼을 테지만 인간의 쓸데없는 만용이 오히려 더 큰 재앙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모를리 없을 터인데 물의 흐름만 방해하는 저런 거대한 인공시설이 이곳에 들어서야하는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
하긴 자연재해예방을 빙자하여 올여름 사람들을 불러 모으려는 장사꾼심리도 있을 테고, 아님 막아내지 못하는 자연재해에 면피용 구조물이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 사방댐을 지나면 이미 찻길이 들어서 있고, 그 덕에 마을까지는 한여름에도 뜨거운 뙤약볕을 걸어가야 한다.
다만 오늘 같은 날은 나무숲에서 바짓가랑이 사이로 걷어내는 빗물도 없고, 쏟아지는 빗줄기를 피하기 위해 속보하기에는 더 없이 좋아 속 거북한 일행들도 멀리한 채 잰걸음으로 동촌마을로 내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