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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후기/2004년

남녁의 봄소식과 꽃노래(덕룡산)

by 에코 임노욱 2016. 5. 19.

남녁의 봄소식과 꽃노래(덕룡산)

 

- 구름모자 -

 

 

집을 나설 때만해도 왜인가 싶지만 막상 나서면 그런 마음은 이내 사라진다. 아마도 오랜 습관처럼 붙어 다니는 역마살이 아직도 내가슴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모양이다.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언제나 반갑다. 그래서 더욱 즐겁다.

 

먼 길을 달려왔기도 했겠지만 기다림이 있는 사람은 그래서 늘 행복하다.

석문귀퉁이에서 우리를 기다린 산사랑 가족들은 족히 스무명은 넘을 듯 싶다. 이 야심한 시각에 아직 오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하고...

이사람 저사람 인사를 나누다 보니 거나하게 취기가 올라온다. 술기운이라도 쫒아보려 애꿋은 축구공만 풍덩풍덕 물에 빠쳐가며 족구를 하다 다시 돌아와 앉으니 못 마시던 막걸리도 거침없이 들어가고 이젠 이것이다 저것이다 가릴 것도 없이 집어 넣다보니 어느새 새벽이 가까워 온다.

 

봉황뜰 소석문 앞으로 이동하여 산행을 시작한다. 이산 언저리를 지나친 것도 어림잡아 십여 차례, 남도의 들녘을 지나치다 보면 자연 이 길을 택하곤 했다. 산도 예쁘거니와 뜰과 바다와 인심이 좋아서 언제라도 찾아오면 반겨줄 사람이 있는 듯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산사랑 사람들을 만나기 전까지 해남이나 강진땅에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니 여간 마음먹고는 남녘 끝자락 산을 찾아오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이곳을 지나면서 습관처럼 산에 대한 궁금함을 가득 안고 돌아오지만 오랫동안 풀지 못하던 숙제를 산지를 통해서야 알았고 이제야 찾아 나선 것이다.

 

게다가 산이름을 알고 나서 부터는 이름 자체가 범상치 않아 더욱 가고 싶어졌던 곳이다. 풍수의 대명사로 붙어다니는 용과 주작이 있으니 아름답지 않을 수가 없고, 명당이 나지 않을리가 없다. 더구나 승천하며 포효하는 사나운 용이 아니고 도암만을 다스리는 덕스러운 용이라니 그 기운이 자리한 땅에서 덕스러운 인물과 문인이 나오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들리는 바로는 다섯 명당 중에 셋은 이미 주인을 찾았으나 둘은 아직 난세를 기다리는 영웅을 기다리고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세인의 관심을 갖기에 충분한 곳이다.

 

보기에도 정겨운 징검다리를 건너면 곧바로 오름길이 시작된다. 제법 땀을 쥐어짜기는 하지만 그리 오래진 않다.

 

산지식이 없는 문외한이라도 첫 번째 봉우리에만 올라서보면 이 산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 능선은 새악시 소합처럼 가지런히 정리를 한 듯 질서가 있고, 봉우리는 용의 등날처럼 날카롭게 하늘을 찌를 기세로 솟아있어 상처 입은 하늘에선 금방이라도 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릴 듯하다.

 

뿐만 아니라 산 양편에 평화롭기 그지없는 마을과 바둑판처럼 말끔하게 정리된 논밭이 있어 십승지의 범(範)세계 온 듯하고, 멀리 보이는 도암만은 점점이 섬들을 띄워놓고, 그 푸르름의 깊이가 어디인지도 가늠하기 어려울 만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뿐이겠는가, 내륙으로는 높고 낮은 산들이 겹을 이루어 마치 깊은 산중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산행은 시종일관 바위와 씨름을 해야 할 것 같지만 기실 붙어보면 그렇지도 않다. 아주 짧은 구간이지만 듬성듬성 흙길을 걷기도하고, 나무사이를 지나기도 한다. 물론 바위길이니 아주 어려운 깔끄막도 내려서야하나 그곳엔 친절하게도 줄과 사다리가 놓여있어 심장약한 사람이라도 조금만 용기를 내면 이산이 품고 있는 묘미를 한껏 즐기면서 산행을 할 수 있다.

 

또한 앞사람이 보이지 않는다고 조급해 할 필요도 없다. 적당한 거리에 도열하듯 늘어선 봉우리들이 겹으로 놓여있어 기를쓰지 않아도 어느 정점에 올라서기만 하면 선두는 어디쯤 가고 있는지, 후미는 어디쯤에 오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여덟 번의 봉우리를 넘어서야만 바윗길이 끝난다. 그러나 바윗길이라고 해서 차갑고 둔탁한 바위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함초롬히 피어난 진달래가 반기기도 하고, 바람받이를 피해 바위 뒷편 양지녘에 숨어있는 생강나무에도 노란꽃이 무리지어 나기도하고, 길섶 풀밭에는 노루귀와 양지꽃, 제비꽃이 앙증맞게 우릴 엿보기도 한다.

 

기나긴 겨울을 지나왔음인지 저 꽃들을 보면 가녀린 여성의 순결을 보는 것 같기도 하여 옷매무새가 절로 여미어 진다.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마는 그 추운겨울을 나고, 대기의 뿌연 황사를 이겨내고 나온 저 꽃잎들은 그져 아무렇게나 이 땅에 던져진 생명들이 아니다.

 

그러기에 그 꽃을 보고 있노라면 더 진한 감동이 찾아온다. 그것이 곧 행복감이다. 지그시 쳐다보면 왠지모를 희망의 눈빛이 있는 듯도 보인다. 이름도 고약한 오랑캐꽃이나 애기똥풀이 됐건, 강한독성을 가지고 있는 은방울꽃이 됐건, 한맻힌 꽃이름처럼 잊지 못하는 복수초가 됐건, 부르기도 민망한 개불알꽃이 됐건, 무덤가에 꼬부라진 할마꽃이 됐건 간에 이 봄에 피어나는 꽃은 모두 다 아름답다.

 

어린애건 어른이건 선한자건 악한자건 약속도 없이 피어난 그 꽃을 보고 감동 받지 않을 이는 없다. 때론 이렇게 아무에게도 주목받지 못하고 저 거치른 들판에서 말없이 피어난 꽃 한송이가 속세에 유명세를 타고난 저명인사의 명강의보다 더 진한 감동을 줄 때가 있다.

 

일곱 번째 바위를 넘어서면 바위의 모양이 현란해진다. 지금까지의 바위를 온 몸으로 직접 느끼며 넘어서야하는 바위라면, 여덟 번째 바위는 먼발치서 눈으로 지켜보며 넘는 바윗길이다. 바위를 피해 우회길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위를 피해 우회하라는 뜻은 아니다. 직접 바위를 오르면서도 충분히 눈으로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어느 것은 먹이감을 노려보는 독수리 같기도 하고, 어느 것은 잔뜩 배부른 두꺼비 같기도 하고, 어느 것은 사바세계를 내려다보는 부처님 같기도 하고, 어느 것은 밥 달라 보채는 돼지 같기도 하다.

물론 한곳에서 보면 그렇지만 지나가면서 보는 그 모습은 보는 각도에 따라 천양지차 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한층 더한 감동이 온다. 그러니 어느 때를 집어 꼭 그 모양을 보아야 하고, 고집스럽게 그 것이 꼭 무슨 모양이라 단정하기도 어렵다. 그러니 남의 눈이나 생각을 의식하지 말고, 그냥 걸으면서 내 생각대로 느끼며 즐기면 그만이다. 그것은 마치 평범한 우리 일상의 세상의 사는 이치와도 같은 것이다.

 

고서에 상아젓가락 하나 선물받았다고 그것에 격을 맞추려면 집안 망한다는 예기가 있다. 상아젓가락이면, 수져도 그 격에 맞춰야하고, 그려려면 적어도 놋그릇에 밥상은 자개밥상이어야 하고, 거기에 맞추려 장롱은 당연 화초장에, 입는건 비단옷쯤은 되어야하고, 집은 기와집에......

 

문제의 시작은 아주 사소한 상아 젓가락 이었지만 종국엔 집안 말아먹는 꼴이니 내가 사는 삶을 남의 눈을 의식해서 쫒아갈 필요는 없는 것이다.

 

때론 남의 눈 의식해 억지웃음으로 포장해서 내놓는 돈뭉치보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밥 한술이 더 깊은 정을 담아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마치 작은 고개마루를 넘듯 여덟 번째 바위를 넘어 동백나무 숲속을 빠져나오면 언제인지 모르게 황금길 같은 길다란 능선이 나타난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그런 모습이 처음엔 낮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지나온 바윗길에 길들여진 시선이 어느 한 순간에 확 분위기가 바뀌어 생소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혹시하며 뒤돌아보면 바윗길은 여전히 내 지나온 곳에 묵묵히 앉자있다.

 

능선길은 한없이 부드럽고 길게 엎드려 있다. 마치 덕유산 동엽령같기도 하고, 능동.제약산이나, 취서.신불산 평원 같기도 하다. 그리나 그렇게 밋밋한 것만은 아니고 정점엔 항상 끝을 알리는 바위가 불쑥 솟아 있다. 이런것이 내가 느끼는 남도의 산이요, 정이기도하다.

 

이런 산에서 산의 높이를 논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 설악산처럼 고고한 바위를 넘어왔으며, 덕유처럼 편안한 능선을 걸어 하루거리니 두 산의 느낌이 내 몸속에 있었으면 됐지 욕심부릴 일도 없다.

지겨움도 없이 갈대숲 하늘거리고 조릿대 서걱이는 마루금을 지나면 작천소령이 빤히 내려다 보이는 마지막 봉우리에 닿는다.

 

다리는 피로감인지 아쉬움인지 내려가는 일을 아주 더디게 한다. 한 걸음에 내달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장단지가 뻐근해서야 아침에 헤어졌던 반가운 식구들을 만난다.

 

애초에 마음먹었던 주작능선은 아직도 기세등등하게 서서 우리를 유혹하고 있지만 마음은 이미 콩밭에 있어 발길을 접는다.

 

때론 아쉬움이 가슴에 사무쳐 그리워지면 또다시 찾을 수 있으리라며 마음을 달랜다. 그래서 훗날을 기약하며 헤어져야 더 깊은 정을 나눌 수 있다며 서운함을 감춘다.

 

모처럼 따뜻한 봄날 남쪽에서 맞는 정겨운 하루였다.

 

후기

둘리 고맙다. 홍빈이 고맙다. 강산이형님 고맙습니다.

한백이 반가웠고, 오랜만에 본 동원이 반가웠다.

 

애쓴 바람이 고마웠고, 샤인이 반가웠고, 설악이 고마웠고, 말많은 만큼 가장 적극적인 바다도 고마웠다. 그리고 죄송스런 말씀인데 내가 이름치라 원래 5명이상 넘으면 잘 기억을 못한다.

저녁에 인사 나누었던 형님 계셨는데 올때 인사를 하고 왔는지...작천소령, 오소재에서 옛향수를 불러일으켜 주시던 큰형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두 다 고맙습니다.

 

기회 만들어 이곳에서도 준비하겠습니다. 날짜 만들겠습니다. 혹여 택해주시면 더욱 고맙게 생각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말 모두다 기쁘고,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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