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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후기/2004년

느낌이 없다면 가지를 마라(산태골과 왼골)

by 에코 임노욱 2016. 5. 25.

느낌이 없다면 가지를 마라(산태골과 왼골)

- 구름모자 -

 

 

산태골과 왼골은 빗점골 합수내에서 절골과 함께 세 가닥이 모여드는 곳으로 들머리는 빗점골과 같이 의신마을이다. 다행이 삼정까지는 차량이 들어갈 수 있어 딱딱한 도로를 걷는 수고를 덜 수 있고, 벽소령을 오르는 삼거리에 제법 너른 주차장이 있다.

벽소령으로 이어지는 작전도로를 따라 2km남짓 올라가면 비로소 합수내를 만나는 삼거리가 나오고 이곳부터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된다.

 

이 곳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남한 파르티잔의 총수 이현상이 최후를 맞이했던 곳으로 등산길보다는 반공세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잊혀진 세월을 찾아 그들의 흔적을 더듬으려는 의식적 행동들이 많아 파르티잔 흔적지 외엔 완전한 등산로가 열려있는 건 아니다.

 

너른바위는 역사의 원혼이 서려있어서 그런지 느낌부터가 다르다. 부근에 이렇다할 바위군도 없는데 너덜이 생긴 것도 이상하고, 그 너덜강을 너른바위라 부르는 것 또한 일반인들은 이해를 하지 못한다.

다만 모여 있는 바위 모양이 물길이 흔적이 스친 듯 다듬어져 있어 오래전 어느 시기에 상류에서 흘러든 바위들이 한데 모였다가 어떤 이유로 순간 물길이 바뀌어 잔해들만 남아있지 않았나 싶다.

 

산태골은 이 너른바위에서 직접 계류를 건너 좌측으로 나아가면 만나게 된다.

하류의 모양은 제법 지리산다운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조금의 시간만 극복하면 그저 지리산의 알려지지 않은 계곡의 원초적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폭포다 싶을 만큼의 물 떨어지는 곳도 보이지 않고, 너른반석 위를 시원스레 늘씬늘씬 흘러가는 물줄기도 없으며, 깊고 푸른 소가 심적 동요를 일으키는 장소도 없다.

다만 어디에 뿌리를 두었다가 예까지 흘러왔는지는 몰라도 크고 작은 바위들이 제 멋대로 뒤엉켜 있어 마치 아비규환의 불바다를 피해 달아나다 그대로 멈춰버린 폼페이사람들의 잔해들처럼 그 상태로 굳어져 석상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을 자극한다.

 

수량이 점점 작아지고, 인적도 점점 세월 속으로 흩어져 길 찾는 일에 신경이 곤두서있을 시간쯤에 두물머리가 불쑥 나타난다.

그나마 바위 가장자리에 짓눌린 이끼 흔적이라도 남아있는 곳은 왼쪽 물줄기여서 건너보지만 이내 남은 물줄기마저 발정난 황소 오줌발만큼이나 흐르고 있어 능선으로 붙기로 한다. 혹여 명선지능같은 선경을 기대하면서....

 

그러나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아는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다. 초반부터 된비알이 연속이고, 산죽들이 진을 치고 있어 걸음은 무디기만 한데다, 잡아끄는 손길들을 뿌리치려니 힘은 배나 더 들어간다.

 

후회해봐야 이미 늦은 일, 처음 만나는 지능 고스락의 쉼자리까지를 쉬지 않고 올라 땀을 들인다.

산죽밭 안쪽으론 간간이 사람 지나간 흔적이 보이긴 하지만 거의 초행길이나 다름없다. 키가 넘는 산죽밭은 삿자리처럼 성기게 쩔어 머리를 숙이거나 유영하는 팔 동작마저 방해하고, 가끔씩 앞을 막고 있는 성벽들은 제일 쉽겠다 싶은 지점을 찾아서 올라야 한다.

 

행여나 하며 찾아든 능선은 조망은커녕 날씨마저 음산하니 마치 어디서 불쑥 반세기전 파르티잔 복장의 패잔병이라도 나타날 듯 적막하다. 그러니 이 골짜기나 능선은 반세기전 이념의 갈등으로 피아 모두가 상처만 안았던 이유를 느낄 수 없다면 들어가지 않는게 좋다.

 

주능을 만난 건 두물머리에서부터 2시간이 흐른 후,

지형도상 등고선만으로는 제대로 찾아낼 수도 없는 짧은 지능선에서 이만큼의 시간이 걸린 것은 아직 지리산이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총각샘으로 이동하여 느긋한 점심을 먹는다.

 

주능은 언제나 사람으로 붐빈다. 토끼봉 오름길은 등산로 정비한답시고 통나무와 잔돌을 모아 계단을 만들고 있다. 걸음걸이에 다소간의 불편함이야 있겠지만 산이 수용할 수 있는 인원 이상을 입장료 몇 푼에 속절없이 들여보내고 있는 지금은 산 스스로의 자구능력을 잃었으니 쓸려 내려가는 흙 한 톨이라도 잡아두려는 그들의 노력이 그나마 안쓰럽다.

 

따뜻한 오후 햇살이 내리쬐는 토끼봉에서 바라다 보이는 주위조망은 신비스럽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운 반야봉이 코앞이고, 왕시리봉능, 불무장등, 삼신봉능선이 남으로 남으로 긴 팔을 뻗어 섬진강에 손을 담아 아우르고 있다.

한 골짜기, 두 골짜기 셀 수도 없이 많은 지류들이 주계곡에 모여들고, 다시 본류, 하천, 그리고 강으로 흘러 들어가기까지 어디 하나 사연이 담기지 않은 곳이 없겠지만, 오늘 저 계곡들은 그저 말없이 지난 일들을 회상한다. 그저 부질없는 일이라는 듯...

 

왼골은 칠불암을 가는길 좌측으로 비교적 뚜렷하게 열려있다.

처음 얼마간은 급경사로 내리닫지만 그리 길지는 않다. 곧 물소리가 졸졸거리고, 얼마간 너덜강을 지나면 너른 두물머리 지점을 만난다.

 

왼골은 산태골보다 규모는 조금 더 큰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곳 역시 지난 역사의 아픔을 아는 듯 요란하게 꾸미지도 않았고, 세인들의 눈길을 끌만한 비경 한군데라도 감추어놓은 없다.

내림길이니 자연 오름길보다 걸음이 빠르고, 험한 벽들이 막아서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거침도 없이 물길을 따라간다.

 

새로운 마음가짐이나 발길을 멈출만한 느낌이 없이 내림길만을 생각하다보니 이젠 물소리마저도 여느 계곡과 다르다. 그것은 마치 사상과 이념의 깊이도 모른 채 숨져간 그들의 원혼을 달래듯 장중한 저음으로 흐르는 장송곡처럼 조용하여 그 고요를 흔드는 우리의 발걸음이 무색하기까지 하다.

 

한때 이 곳의 수장이었던 이현상이 평당원으로 강등된 후 죽음에 이르기까지는 불과 20여일, 그 짧은 기간 남과 북, 그리고 동료들에게까지 소외를 받았던 그 순간에 그는 어떠한 사상을 꿈꾸었을까? 왜놈들마져도 개전改悛이 불가능하다 했던 그의 47년 사상적 이념은 새로운 루트작업이 가능했을까? 아니면 평생을 바쳐온 투쟁의 습성이 비굴한 타협보다는 차라리 의로운 죽음을 택했을까?

 

하지만 한때 그가 그들만의 고독한 영웅이었다하더라도, 다른 한편으로는 공적을 쌓아 출세를 지향하는 사람들의 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누구의 총탄에 쓰러졌는지는 영웅심 가득한 아군의 욕심으로 훗날 인위적인 판단으로 가려졌지만, 그들이 서로 자기 것이라 공적을 다투는 와중에서도 그의 싸늘한 시신은 화개장터 앞에서 화장되어 한줌의 재로 섬진강으로 사라졌다.

 

다시 합수내를 만나니 몇 사람의 산꾼들을 만난다. 이런 곳을 들었다하면 지리산매니아이거나 그런 류에 젖어가는 사람들일테니 반갑지 않을 수가 없어 인사를 나눈다.

 

다시금 너른바위 돌 틈 사이를 겅중거리며 건너올 때는 묘한 감정이 일었다.

이제 머지않아 해가 기울고 또다시 밤이 찾아오면 그들은 암흑속의 세상을 다시 떠도는 건 아닐까?

부모 잃은 설음, 아내 잃은 설움, 자식 잃은 설움, 고향 잃은 설움, 친구 잃은 설움, 그리고 이념밖에 내던져진 설음들...

아니 이제는 이승의 온갖 설움뿐 아니라 겨자씨 한 톨만큼의 무게도 되지않을 영혼이 누울 자리마저 잃은 설움까지도 아직 이 너른 지리산을 헤메고 있으니 이제는 말없는 숨져간 그들의 원혼도 달래줘야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 때문이었는지 마지막 남은 내림길 얼마간은 왠지 모르게 발길이 무거웠다.

그것은 아직 내미는 손도 잡아주지 못하는 우리들 자화상에 대한 회한이었다. 어린시절부터 쌓여진 반공세대 이데올로기 의식이 잠재되어 있는 굳은 머리들의 풀리지 않는 답답함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