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위대함이란(통신골과 천왕골)
- 구름모자 -
어수선한 밤을 보내서인지 몸과 머리가 제 몸뚱이가 아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자숙하면서 희생하면서 살아도 부족한데 괜한 일로 많은 사람들에게 심적 부담만 준 듯 하다.
중산리 매표소를 통과할 땐 날씨가 상쾌해 그나마 무거웠던 머리가 풀린다. 천왕봉을 오르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길이지만 우리같은 사람은 집념이 무뎌서인지 아님 대인기피증이라도 생긴 것인지 접근 시간이 길다는 핑계 하나로 찾는 일이 뜸하여 아득한 옛날 일처럼 느껴진다.
‘우천 허만수’님의 비 앞에서 그늘 속으로 들어선다. 칼바위 까지는 쉬엄쉬엄 30분, 낮은 경사지만 가쁜 숨을 토해 내는 건 아직도 제 컨디션이 아니라는 뜻이다. 철이 철인지라 많은 사람들이 오르지만 조금 후 법계사 삼거리를 지나면 동행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적어진다. 천왕봉을 조금 더 가깝게 오르려는 인간의 심리가 보태진 덕분이다.
법천폭포가 있는 옛 조교를 지나고 오름길이 제법이다 싶으면 이른바 홈바위라는 곳이 나타난다. 계곡 쪽으로 기운 널다란 반석으로 땀들이기엔 더 없이 좋은 장소이다.
통신골의 느낌은 바로 위 윗지점 법천골의 너덜강에서부터 느껴진다. 사태에 쓸려온 규모있는 바위들이 널따랗게 계곡을 메우고, 붉은 빛이 선명한 상흔들은 보기에도 안쓰러워 마음마저 아려온다.
계곡을 가로지른 목교를 건너면 곧 유암폭포, 기름을 칠한 듯 미끈미끈하다는 암반 위를 늘씬하게 미끄러져 내리는 물줄기가 가을의 기운을 느끼게 한다. 지난 여름의 소란스러움이 아닌 이 가을을 사색하는 여유로움으로...
유암폭 뒷덜미로 내려서서 잠시 법천골 골짜기를 오르다 우측의 통신골 초입을 들어선 후 잰걸음으로 몸을 숨긴다. 이미 유암폭포를 내려서면서부터 범법자의 길로 들어섰으니 지금부터는 붙들리지 않고 살아남기 위한 의식적 행동이었다.
불과 과반세기전 일제강점기말에 시작했다는 이 골의 사태는 해방 후에도 몇 차례 더 고통을 겪고 난 후에야 지금의 모습으로 태어났다. 그러니 당연 옛 선현들이 의미를 담아 지어놓은 골짜기 이름이 있을리 만무하겠지만 그렇다고 남한반도 최고봉인 천왕봉에서 직접 발원하는 골짜기를 발상조차 엉뚱한 통신골이라 부르고 있다니 실소가 흐른다. 차라리 이름없는 무명골이라면 정감이라도 있으련만...
이곳은 계곡의 본 모습을 보여주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불과 십여분이면 나타나는 작은 폭포에서부터 오늘 올라야 할 곳이 예사롭지 않음을 알려준다. 게다가 오늘같은 날은 가을하늘을 배경으로 들어차 있는 원경들이 뚜렷한 의미로 각색하여 절경아닌 곳이 없다. 올라야할 저 높은 곳의 천왕봉이 그렇고, 바라만 보아도 설레이는 계곡 건너의 일출봉이 그렇다.
이 골의 폭포엔 물이 적어도 상관없다. 주위 배경이 한없이 경이롭고, 우회로가 없는 폭포는 직접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위험도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만만하게 붙을 만한 곳은 더더욱 아니다. 언제나 지리산을 처음 찾는 마음처럼 신중하고 조신하게 올라야 한다. 그래야만 천왕봉을 가장 가깝게 오를 수 있는 행운을 준다.
자연의 위대함이란 참으로 경이롭다. 인간이나 또다른 불가항력적인 자연의 힘에 의해 처참하게 파괴되었어도 파괴된 그대로 채념하지 않고 다시 이런 모습을 만들어 낼 수 있으니 말이다.
어느 지점이 꼭 폭포라 할 곳도 없다. 보이는 곳 모두 처음과 끝이 한 몸으로 이어져 있으니 예서도 폭포이고 제서도 폭포이다. 그러니 이것은 무슨 폭포니 저것은 무슨 폭포니 하는 이름을 굳이 가져다 붙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다만 일반적인 계곡의 느낌만으로 굳이 비교하자면 한신계곡이 경험이 더해진 중년의 원숙미가 넘치는 분위기라면, 이곳은 이제 소녀티를 벗고 막 피어오르는 청년기로 접어들어 제모 습을 갖추어가는 청순함이 돋보이는 계곡이다.
원시적인 의미란 과연 어떤 것일까? 처음 만들어진 그대로에서 변하지 않은 것일까? 아님 변하였다 하더라도 다시 옛 느낌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흔히 느끼는 감정의 원시적이라 함은 짙은 숲과 고목, 그 나무를 덮고 있는 이끼와 간간이 새어 들어오는 빛, 그리고 그러한 분위기에서 찾아오는 긴장감, 느낌으로만 전해지는 소리들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 모습을 엄밀히 따지자면 원 바탕위에 새롭게 각색하고 덧칠해져 만들어진 이중적 원시가 아닌가? 그렇다면 그 각색 이전 최초에 만들어진 모습이 더 원시적인 느낌이어야하지 않을까?
태초에 생성된 그대로에서 변하지 않은 것이 없을 듯싶지만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지금 이 골짜기를 이루고 있는 바위들을 내 능력으로 풀어내기는 어렵다. 그것은 아주 오랜 세월동안 미세먼지와 같은 작은 흙 알갱이 하나하나가 모여 우주 또는 지구의 어떠한 작용이나 힘에 의하여 굳어지고 다시 한 덩어리의 바위가 될 때까지의 기나긴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단한 바위로 생성된 후 지금까지의 과정이 저 흙속에만 묻혀 있었다면 그 모습의 변화는 이제 겨우 과반세기를 지나고 있으니 그 느낌이 더 원초적인 원시 아닐까?
이 골의 바위들은 모두가 그런 모양이다. 어느 곳은 화성암 같기도 하고, 어느 곳은 퇴적암 같기도 하고 어느 곳은 변성암 같기도 하다. 또한 아주 오래전에 일어난 지각변동도 제각각이어서 어느 곳은 습곡이 일어나고, 어느 곳은 단층이 일고, 또 어느 순간 융기됨으로서 그 높이가 남한반도의 제일 높은 봉우리를 이루었으면서도 적어도 60여년전 수마가 쓸고 내려가기 전까지 그 오랜 세월 흙이불을 덮고 있었던 탓인지 원래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통천문으로 오를 수 있는 조그만 지계곡이 하나 갈리는 지점 전까지는 그 큰물에도 휩쓸리지 않은 거대한 바위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으나 그 위쪽은 어림도 없다. 경사도 경사지만 하늘만 보이는 협곡을 지나듯 외길로 이어져 오름길에 대한 선택이 없으며, 어느 곳은 벽을 우회하기도 하고, 때론 거대한 물 떨어짐 장소의 측벽을 기어오르기도 한다.
천왕봉의 바위군들이 점점 가까워지면서부터는 그 형이상학적인 느낌이 더욱 강렬하여 마치 어느 선계에 초대받아 길을 나선 사람들인 양 기분이 부풀어 오르고, 머지않아 상제가 보낸 선녀들이라도 마중나와 인도할 것 같은 신비함을 갖추고 있다.
오름길의 난이도만 가지고는 많은 시간이 걸릴 듯도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그것은 천왕봉을 다이렉트로 오를 수 있는데다가 계곡이 곧추섰으니 자연 네 발을 사용하게 되어 순식간에 고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한 일련의 폭포군이 끝을 맺는 곳은 사태의 시발점.
아직 군데군데 흔들리는 바위와 흙들이 보이긴 하지만 경치는 이곳의 맺음을 장식하듯 장쾌하다. 올라온 협곡이 눈 아래 펼쳐 보이고, 뒤바뀌는 계절이 만들어 놓은 단풍의 향연이 현란스럽다.
예서 정상부근에 있는 바위군을 돌아 천왕봉까지는 이십여분이면 족하다.
가을을 즐기러온 인파를 피해 천왕샘 아래로 내려선다. 그러나 샘은 이미 말라있고, 끊임없이 줄을 잇고 있는 인간숲이 마치 여느 시골 장터 같은 분위기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저 아래서 살고 있는 모습인데도 도데체 난 산속의 이런 분위기 적응이 왜그리 쉽지 않은지...
천왕골(가칭)을 들어가는 초입은 은밀한 곳에 있다. 어수선한 분위기를 피해보고자 능선을 벗어나 숲으로 들지만 만만치가 않다. 사람흔적이 거의 없어 처음부터 발디딤에 주의해야하고,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쳐진 나무들의 공격에도 찔리지 않도록 세심하게 살피면서 내려서야 한다.
지리에서 이런 골짜기는 이제라도 사람들에게 더 이상 보여지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면 그것은 나만의 이기주의일까? 그러나 지금 이 곳은 사람들이 들어와서는 않된다는 멧세지가 곳곳에서 나의 가슴을 찌른다. 길이 있고 없고, 계곡이 좋고 나쁨을 떠나 지금까지 만들어진 자연의 노력에 더 이상 상처가 없었으면 하는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 일 것이다. 적어도 이곳에 들었다면,
지리산에서 가장 깊고 은밀한 곳이라 여겼던 수도자는 안타까움을 안고 벌써 이곳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깨침의 기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몰라도 인간의 다스림을 위한 길에 인간이 방해가 되어 인간을 피하게 되는 아이러니는 보편적인 생을 사는 우리와는 달리 구도의 길이 얼마나 깊고 험한지를 느끼게 해준다.
늦은 점심을 들고 내려가는 이 골짜기는 신비스러움 그 자체였다.
사람이 없어 느끼는 일반적인 조용함과는 달리 천왕봉의 기운이 느껴지는 분위기와 자연이 빗어낸 조화가 섬짓섬짓 우리들을 놀라게 하였다.
행여 돌맹이 하나라도 우리로 인해서 움직일세라 조심조심 걸음이 옮겨지고, 거대한 암벽을 흘러내리는 가느다란 물줄기 하나에도 우리의 오만한 심성에 오염될까 두려워 황급히 이곳을 빠져 나왔다.
천왕봉에 몸을 기댄 두 골짜기에 그들의 허락도 없이 찾아들어가 용서받지도 못할만큼 더렵혀진 육신이나 싯어내려는 우리의 무례함을 사죄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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