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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후기/2004년

다른곳과 견주지 마라(칠선골과 제석봉골)

by 에코 임노욱 2016. 5. 25.

 

다른곳과 견주지 마라(칠선골과 제석봉골)

- 구름모자 -

 

『지금 저의 솔직한 심정을 말씀드리면 이 글을 쓸 자신이 없습니다. 혹여 서툰 미사여구로 미치도록 현란한 칠선의 아름다움을 욕되게 하지나 않을까 해서 입니다. 그래서 더욱 두렵습니다.』

 

 

몇 일째 계속되던 장마가 다행히도 지금은 빗줄기는 멈추고 잔뜩 찌뿌린 얼굴로 우릴 내려다보고 있지만, 혹여 우리가 칠선을 오른다는 허툰 짓이라도 할 양이면 언제라도 세찬 빗줄기로 기를 꺽을 기세다.

몸부림을 치며 부지런을 떨어도 추성동에 모인 시간은 캄캄한 한밤중 12시. 간단한 저녁과 한 잔술로 마무리를 한다해도 이미 2시가 넘고, 내일을 위해 눈을 붙일 시간은 겨우 두 시간이었다.

 

 

새벽의 고요함을 흔들고 있는 소리는 오직 하나 계곡물 소리, 눈을 비비고 일어나 이른 조반을 먹고 도둑고양이처럼 숨을 죽이며 매표소 앞을 빠져나와 장고재를 오른다.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는 몰라도 새로 돈을 들인 오름길의 인공시설들은 인도도 아니고 차도도 아닌 어정쩡한 형태를 하고 있어 자연 그대로의 상태보다 오르내림의 불편함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동계에 빙판이라도 만들어지면 아무런 대책이 없는 불필요한 구조물 이었다.

 

장고재에서 바라다 보이는 두지동은 그지없이 평화스럽다. 꼭지점을 잡아 원을 그리듯 산모롱이를 빙 돌아나가면 두지동을 지키는 성루처럼 담쟁이덩쿨을 감고있는 담배건조장이 떡 버티고 있고, 그 앞엔 인민군 복장의 마네킹이 총을 들고 성문을 지키고 있다. 그 자그마한 동네 안쪽으로 몇 채의 농가아닌 농가가 있다.

 

이른 새벽 남의 동네를 기웃거리는 건 어차피 이방인의 행세인지라 쉼없이 그 자리를 지나친다. 창암능선에서 시작하는 조그만 지곡에 앙증맞은 목교가 설치되어있고, 대밭을 지나 첫 번째 계곡을 건너는 철다리 앞에서 다리쉼을 한다.

 

물소리가 예전의 소리가 아니다. 살아있는 물소리다. 새로운 생기를 불어 넣는 기도소리와 산울림이 들려온다. 비로소 칠선의 기운 안으로 들어 온 것이다.

칠선이 어디인가? 설악의 천불동과 한라의 탐라와 함께 남한의 3대계곡이라 하지만 천불동은 남성적인 암릉과 어우러져 화려함이 앞서고, 탐라는 화산의 특성상 물이 귀한 곳이니 진정한 의미의 제일을 찾으라면 당연 이곳이 아닌가 싶다.

 

남한 반도의 제일 높은 곳에서 시작하는 기운이 우선 제일이요,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원시림이 있는 곳 또한 오직 이곳 하나요, 그 깊고 너른 품에서 흘러나오는 어머니 젖줄 같은 계곡과 포근함이 모두 칠선의 품안에 있는 까닭이다.

사십리의 계곡에 7개의 폭포와 33개의 소와 담이 있다고 하지만 그건 단순히 견주기 좋아하는 사람들 눈에 드러난 숫자이지 사실 따지고 보면 수백 수천의 여울이 모두 여느 산의 소와 담에 비길 바가 못 된다.

 

삐그덕 거리는 출렁다리를 건너면 지금은 묵정밭이 되어버린 옛 칠선동 화전민터 앞으로 길이 이어져 당분간 계곡물소리는 저 아래 내려두고 초암능의 비탈면을 밟으며 나아가게 된다.

날은 흐리지만 새벽공기를 나르는 아침이 상쾌하고, 녹음짙은 나뭇잎에선 풋풋한 생명력이 넘쳐난다. 그 길이 지루하다 싶을 즈음 다시 계곡을 만나면 단아한 목교가 선녀탕 앞을 가로 지르고 있다.

 

지난 몇 번의 태풍과 폭우에 그 모습이 어느정도 변했다 하더라도 천신의 딸 일곱 선녀와 연정을 품었던 곰, 은혜를 베푼 사향노루의 흥미 가득한 전설은 여전히 너른 소沼 안에서 넘실대고 있다.

원래의 옛길은 계곡 좌측에 있지만 우린 다리를 건너 우측 비탈길을 나아간다. 잠시면 가장 단아한 모습의 옥녀탕을 만나고, 이곳부터는 전형적인 칠선의 계곡미를 보여주는데 너른 반석과, 수심 깊은 소, 계곡 양편에 도열하듯 늘어서 있는 단애들이 줄지어있어 때론 바위벼랑을 타고 넘어야하고, 어느 곳에선 아주 좁은 구멍속을 통과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계곡에 놓인 소와 담들은 예전 같으면 깔때기 모양으로 물을 모아 가지런히 함지박에 쏟아 부어 새색시처럼 정갈하고 다소곳한 모습이었지만, 오늘은 엊그제 내린 비의 영향 탓에 너른 암반 위를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부챗살모양으로 흘러내려 춤을 추는 무희의 동작이나 신명들린 무당의 굿판을 연상케 할 만큼 현란하고 요란스럽기 그지없다.

 

골 안은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간간이 빗방울이 나뭇잎을 두드려 스산한 기운이 감돈다.

때를 기다리기라도 하듯 계곡물이 넘쳐나는 곳에 다다르니 한 시간여를 앞서 갔던 한 무리가 너른 여울쪽으로 하반신을 물에 담근 채 계곡을 건너고 있는데 여간 위태롭지가 않다. 선녀탕 이후부터는 휴식년제 통제구간이라는 미명하에 위험을 덮을만한 인공시설물이 전혀 없는 탓이다.

 

뒤따르는 일행이 보이지 않아 우선 임시방편이라도 가까운 곳에서 굵은 통나무 하나를 구해다 여렵사리 바윗사이에 얹혀 나무다리를 놓는다. 그러나 그마져도 외나무다리 인지라 불안한 건 마찬가지, 온갖 정신을 집중하여 일행들을 옮기지만 기어이 한 사람의 희생자가 칠선의 여신에게 무레함의 용서를 고하는 의식을 치르고 나서야 그곳을 건너올 수 있었다.

 

어느 때라도 계곡의 수려함에 취해보고자 나설 수 있는 용기는 다시 볼 수 없는 선경도 선물할 수 있지만, 우중의 위험함은 그에 비례하여 뜻하지 않은 경험으로 고역을 치를 수도 있는 일이다.

이미내린 비로 계곡이 넘쳐나고 오늘도 기상예보는 비를 예고하고 있는데도 이곳에 들어왔다면 이는 각오하고 하고 온 것이나 다름없기에 이후 몇 번의 도섭은 그만큼 위험성의 강도가 상존하고 있음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계곡은 이미 이성을 잃고 있었고 좁은 협곡에서는 굉음까지 지르며 우리를 윽박지르고 있어 단 한번의 실수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희한한 것은 그런 광란의 춤이 아무리 파괴적인 힘으로 우리를 압박해 오고 있어도 아름답다는 느낌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비록 마음속의 여유를 느끼는 순간이 짧을 뿐이지 오히려 더 진한 감동이 전해오고 있다.

 

청춘홀을 지나면서부터는 등산로가 조금 더 험난해진다. 비는 간간히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하고 곡예를 하듯 이리저리 험로를 피해 나가다 보면 칠선폭포가 굉음을 내며 심적 동요를 자극한다. 가까운 곳까지 내려서는 용기보다는 위쪽에서 내려다보는 위용만으로도 가슴이 싸할 지경이다.

칠선계곡에서 ‘칠선’이란 명칭이 붙었으면 이 계곡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겠으나 오늘은 그뿐이 아니었다. 그것은 평소와 같은 가벼운 물기둥이 아니라 대들보위에 얹혀진 상량목같은 거대한 물기둥이 엄청난 속도로 곤두박질을 치고 있어 귀가 멍하고 머리가 쭈뼛 일어서는 느낌이 들어 어지럼증마저 일었다.

 

비를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약한 게 인간의 마음이니 그리 초연해질 수는 없지만 때마침 한 무리의 하산객들을 만나 대화를 주고받으니 다행이라는 안도감에 금새 마음이 평온해 진다.

그들이 내려올 수 있었다는 건 우리도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더구나 우리는 오름길이니 수량이 점점 적어지는 상류방향이요, 그들은 수량이 점점 많아지는 하류방향 아닌가? 다만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천왕봉이 아닌 제석봉이었던 게 조금 문제가 되기는 했지만......

 

대륙폭포 앞은 두물머리다. 촛대봉과 하봉사이를 흐르는 지계곡에 서있는 대륙폭포 또한 장관이지만 그보다는 본류의 물이 훨씬 적어진다는 안도감이 더 마음에 와 닿았다.

이제는 어차피 본류를 버려야할 시간. 우측의 산죽밭사이를 차고 들어가 계곡으로 내려서니 폭포를 하나 사이에 두고 제석봉골 초입이 보인다. 지도를 놓고 고도와 방향을 확인한 후 쫒기는 사람처럼 그곳으로 들어선다.

 

아직은 비가 그치질 않았지만 다행히 아직 염려할 만큼의 비가 내린 것은 아니다.

제석봉골의 첫 느낌은 날씨만큼이나 음침했다. 길은 있는 듯 없는 듯 이어지기도 하지만 애초부터 사람이 편히 다니는 길은 없었기에 이상하다 싶으면 그냥 계곡을 차고 오르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다.

 

10여분을 올랐을까 우측에 심마니 모덤이 보인다. 이른 시간이지만 새벽밥 먹고 오른지 이미 5시간이지나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일행을 기다린다.

잠시 그쳐주던 비가 점심을 마치고나니 다시 쏟아진다. 시간여유가 있을 성 싶어 쉬어가려 했으나 시끄럽게 나뭇잎을 두드리며 재촉하는 빗방울 때문에 하릴없이 배낭을 들쳐 맨다.

 

계곡은 보기 드물게 사람의 흔적이 있긴 하지만 원시 그대로이다. 초입부터 아주 좁은 협곡이 이어져 있고 나무엔 이끼들이 가득하다. 따라서 올라가는 길의 선택의 폭은 아주 적다. 그런데 지금은 그 비가 문제인 것이다. 이 좁은 협곡에 끊임없이 놓인 폭포는 양 벽들이 수직으로 막아서고 있어 폭포 좌우벽, 또는 중앙부분의 손잡이와 발디딤을 찾아 오르는 수밖에 없지만 그나마 태가 끼어 여간 미끄러운게 아니다. 어떤 곳은 집채만한 바위들이 뒤엉켜있어 물길 속을 지나가야하고 때론 미끄러운 슬랩을 곡예를 하듯 기어가야한다. 마치 한 방향으로만 빛이 새어 들어오고 사방은 모두 막혀버린 공간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다.

 

계곡은 점점 더 점입가경이다. 만약 고도계마저 없었다면 계곡이 언제 끝이 날지를 판단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시간은 당초예상보다 훨씬 더 초과하여 이미 세 시간이 지났는데도 해발 천사백 이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지리산만 오면......

 

한 모롱이를 돌아 계곡이 조금 넓어졌다 싶어 올라서니 우측에 조그만 지계곡이 하나 나뉘고 우리가 가야할 길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높다랗게 걸린 폭포가 하나 막아서고 있다. 우회로가 있었지만 벽을 차고 오른다. 그러나 끝은 그게 아니다. 상류쪽은 끝이 없는 물기둥이 이어져 있고 눈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폭포와 소와 담뿐 이었다.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은 이미 사치인 듯 느껴지고 정신을 차릴 겨를도 없이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어께를 누르고 있었다.

 

자꾸만 마음에 혼돈이 일어난다. 지금 내 앞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은 환상이 아니다. 이제는 생명을 위협하는 현실일 수도 있다. 뒤는 자꾸만 멀어진다. 따라서 기다리는 시간도 점점 더 많아진다. 그리고 비는 아직 그대로이다. 느낌마저도 음산하다. 상당한 고도에 올라와 있음에도 이미 내린 빗물은 끊임없이 계곡에 흘러들어 남은 거리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물이 거의 멈추었다 싶은 협곡 앞에 다다르니 갑자기 허기가 몰려온다. 털썩 주저앉자 행동식을 먹는다.

 

다시 머리를 쥐어짜 본다. 지금 해발이 천육백, 제석봉이 천팔백이니 제석봉으로 직접오르지 않고 제석단으로 오른다면 해발 천칠백 정도로 올라설 것이다. 그럼 남은 고도 약 백, 짧게 30분, 길게 한시간, 그 정도에서 마무리 할 수 있다면 하루 일정으로 무리는 가지 않을 성 싶다.

 

계곡이 끝나면서 덤불지대가 시작된다. 큰나무가 없는 걸 보니 주능이 가까워 졌다는 증거였다. 사면은 습하고 부엽토가 많아 곤달비와 단풍취, 그리고 고비, 고사리 등 이끼과 식물이 지천이다.

쇠약해져가는 체력에 길을 만들어 가야한다는 부담보다 길게 늘어선 일행과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라도 빨리 진행이 되지 않는다. 아니 어차피 그건 어려운 일이었다. 붙들어대는 덩굴들과 쓰러진 고사목이 안개 속에서 불쑥불쑥 나타나고, 잡아끄는 배낭을 빼앗기지 않으려 몸부림을 친다. 이 공간은 모든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낮아지는 허리에 통증을 느낄즈음 하늘금이 터지며 거대한 고사목 세 그루가 능선마루에 서있다. 근세에 인간의 욕심이 부른 화마로 이제는 고사목마져도 사라져버린 제석봉 능선 아래 이름없는 무덤 앞이었다.

 

사람들을 모아 제석단을 내려서니 불쌍한 어린양들에게 차마 뿌리지 못하고 기다렸다는 듯 세찬 소나기가 퍼붓는다.

비록 장소는 지난 역사의 아픔들이 베어있긴 하지만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장소이니 우중산행에 우중 텐팅이라 할지라도 느끼는 기운은 살아 있어 하루를 마무리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