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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후기/2004년

지리산 화엄사에서 초암릉까지

by 에코 임노욱 2016. 5. 19.

지리산 화엄사에서 초암릉까지
- 김 명 국 -

 
1. 일시 : 2004.1.22 ~ 1.25 (2박 4일)
2. 장소 : 지리산
3. 코스 : 화엄사 ~ 초암릉
4. 날씨 : 맑음
5. 참석
- 강산 전제 산사랑
- 미래 대경 산사랑
- 한백 대경 산사랑
- 희영 전제 산사랑
- 설악 전제 산사랑
- 짱구 전제 산사랑
- 뻐꾸기 전주파이오니어스
- 선자 전주파이오니어스

6. 산행시간

1월 22일
-15:50 화엄사 매표소(입장료 1600원,문화재관람료 2200원)
-17:15 국수재
-20:20 노고단 산장

1월 23일
-05:50 기상
-07:30 출발
-08:50 임걸령
-10:30 화개재
-13:06 연하천
-14:15 출발
-16:04 벽소령 산장

1월 24일
-07:10 벽소령 출발
-09:40 세석 산장
-11:00 출발
-12:10 장터목 산장
-14:15 천왕봉
-15:10 중봉
-16:20 하봉 헬기장
-17:00 초암릉 초입

1월 25일
-02:00 추성산장 도착

8. 산행후기

설악이 한테서 전화가 온다.설연휴에 지리에 들어가자고 ..덕두봉부터 시작하잔다.
나는 성격상 또 무조건 오케이를 한다. 그리고 다음에 돌아서서 후회한다. 이런 내 우유부단한 성격을 누군가가 문제가 많다며 지적했는데 이번에도 여실히 이 우유부단한 성격이 들어난다.

괜히 산행한다고 했나 하는 후회도 되고 설에 집에 올 가족들 생각도 나고...하지만 약속했으니 가야지..처음엔 설악이 겁 없이 여름에도 제대로 못한 태극종주를 하자고 한다. 아무래도 이상기온탓에 설악이가 제정신이 아닌가..

설연휴 시작
그러나 오기로한 설악이가 두 번씩이나 약속을 어긴다. 야속하기만 하다. 결국 설당일에 배낭을 다시 꾸려 익산역으로 설악이를 태우러 가는데 설악이 말고 짱구라고 친구가 동행한다고 한다. 처음 산행제의가 설악,희영,선자,나 그렇게 4명인줄알았는데 화엄사주차장에 집합한 인원이 7명이다.거기에 한명이 더 오고 있다고 총 8명이나 된다.

언젠가 국골에서 간단하게 인사만 나눈 완도에서 오신 오십대의 강산형님
초면인 대구에서 오신 미래형님과 한백형
역시 설에서 온 짱구도 첨이다.
수원에서 온 설악이,또 해남에서 온 희영, 그리고 삼례에서 선자,또 군산에서 뻐꾸기
이렇게 8명이 이번산행을 함께 했다.

이번에는 설악이가 일행을 위해 여행자 보험에 들었다고 한다.
단체로 9천원이 조금 넘는 금액으로...죽으면 얼마나오냐는 말에 잘 모른단다.아마도 9천원이상은 나오겠지..

산행시작
화엄사 매표소, 입장료가 장난이 아니다.올랐나?원래 이곳이 비싸기는 하지만 입장료1600원에 문화재관람료2200원,총 3800원이다. 문화재관람료가 오르면 오를수록 부처님에 대한 내사랑도 함께 멀어짐을 느낀다.

다들 컨디션이 좋아보인다. 설악이만 산행전인데도 걱정인 듯..저놈은 좋던 컨디션도 산에만 오면 저런다.

초입이라 그런지 눈구경을 할 수가 없다.간간히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만이 이곳이 지리라는 것을 일깨울뿐 뒷산에 올라온 듯 맘이 편하다. 초반에 선두에 서서 산행했는데, 설악이가 자꾸 쳐지는 듯하여 후미로 빠진다. 산행초반인데도 설악이 발이 땅에 붙어 좀처럼 떨어지질않는다. 코재는 아직 멀었는데 설악이는 자꾸 저기가 코재라며 힘들어하고 있고 선두와 많이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걷는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더 길어진다. 아직 어둠이 내릴 시간은 아니지만 멀리 구례읍의 야경이 시원스레 펼쳐지 있고 위로는 멀리 노고단의 통신탑이 덩그러니 하얀 눈밭에 서있는 듯하다.

앞선 일행은 이제 완전히 설악이와 내게서 멀어져 있다. 얼마를 올랐을까 노고단의 그지루한 콘크리트포장길이 가까워오자 눈길로 금새 변해있다. 설악이의 머리에 걸려있는 랜턴불빛이 자꾸 땅아래로 향하기만 한다. 미안한 듯 설악이 중얼거리고“미안해 다신 10KG감량후에 지리에 온다. 그때까지 이제 절대 안온다” 걸핏하면 내뱉는 말이지만 “지발 넉넉한 니살들허고 이별좀 혀라 뭔놈의 미련이 그리 많다냐”

또 그렇게 쉬며 걸으며 한숨지며 죽자살자 오른다 안식처가 가까워서인지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낀다. 산행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멀리 구례가 더멀리 남원골이 시야에 들어오고..
힘들다 못간다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구 악으로 깡으로 걷는 설악이

노고단 산장 도착 20:20
산장에 도착하니 앞서간 일행이 벌서 술판을 벌이고 있다.늦게다던 대구의 미래형님은 택시를 이용 성삼재에 도착하여 설악이와 나보다 먼저 와 계신다.
오랜 운전과 산행의 피로 탓인지 완도에서 오신 강산형님이 자리에 들어가고 ...
설연휴에 지리를 찾는 사람들 대부분이 초행자가 없는 탓에 서로 한다리를 건너면 대부분 아닌 처지다. 그중 미래형님과 인사를 주고 받는 사람이 지리산 처리라는 닉을 쓴다.초면인데도 지리산사랑이란 동호회의 매개탓인지 금새 친근감이 느껴진다.



23일
둘째날 종착지를 벽소령 산장으로 정했다. 전체적인 산행속도로 보아 적당하다 생각한다.
지난밤 술자에서 통성명을 한탓에 지리산처이와도 사진도 담고 서로 웃는 얼굴로 아침산행을 경쾌하게 준비한다. 산행전 컨디션체크 모두 좋아보인다.
어제 힘들어하던 설악이도 먼저 몸을 뉘인 강산형님도,얼굴의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 커다란 입을 자랑하듯 활짝 웃고 계신다. 어제 선두에서 일행을 이끌던 한백형도,언제나 여전한 모습의 희영, 힘이 좋아보이는 짱구도, 짧은다리의 가능성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일행의 막내인 선자도 역시 좋아보인다.


산행은 시작되고 노고단으로 오르는 길이 너무 아름답다. 상고대 아님 그냥 눈꽃이라 하나? 어찌 칭하든지 눈에 뵈는 모든 것이 우리 일행의 산행을 위해 누군가 만들어 놓은 듯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설악인 자신이 산행속도가 제일 느리니까 먼저 출발하다며 올라가고 있다. 이쁜 놈..이래서 이놈을 사람들이 그리워하나..

임걸령으로 향하는길..
겨울의 한복판인지라 길은 눈이 녹아 얼어붙기보다는 쌓인눈이 대부분 그대로이다.
오늘도 산행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다.


 연하천에서 간단하게 중식을 해결한다. 짱구가 얼마전 산장에서 며칠 머문탓에 일면식이 있는 산장지기로부터 따뜻한 차도 대접받고, 점심을 먹으며 취사장을 둘러보니 대부분이 지난밤 노고단 산장의 취사장에서 함께 했던 사람들이다.

오늘의 목적지는 벽소령 .. 그러나 식수가 얼어서 구해기가 어렵단다. 결국 식수통에 물을 보충해 내배낭에 얹는다.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5리터이상이듯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또다시 설악이와 내가 후미다. 배낭에 물을 얹은 탓에 이리저리 몸을 가누질 못할때가 있다.아니나 다를까 그렇치 않아도 성치않은 오른쪽 무릎과 발목이 삐끗한다.
이런류의 통증은 이제 만성화가 되서 크게 불편하지는 않지만 내일도 계속 될 산행인지라 걱정이 앞선다.


벽소령 도착 16:05
취사장,산장내부 온통 발디딜틈없이 인산인해다. 여러종류의 술을 섞어 마신탓에 강산형님이 일찍 잠자리에 들고 ..

내일이 선자 생일이다. 나는 와인을 가져왔다. 설 선물로 들어온 것을 들고왔는데 생각해보니 마침 선자 생일이 이 즘이다. 무지 비싼 와인이라며 생일선물로 가져왔다고 하니 엄청 좋아하는 모습이 .. 무겁긴해도 가져오길 잘 했다싶다.

술자리가 얼마나 지났을까 어라? 이런 희영이가 분명 취했다. 그런데 하는 짓이 귀엽다. 좀처럼 취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희영이가 취하다니, 억지로 부축하다 시피해서 대피소 안으로 들여보낸다.
-대부분이 고이 주무시는데 희영이 지 매트리스가 없다며 어린애 마냥 투정이다. 참 난감하다. 저놈 성격에 지 매트리스 찾아오기전에 자지 않을 것 같아 내 매트리스라도 갖다줄 요량으로 내려오니 다행히 잠잠해진다.


24일 벽소령 출발 07:10 험난한 그날이 밝아왔다.
앞에 닥칠 가시밭길을 알지못한채 새벽 일찍 짐을 꾸려 벽소령을 출발한다.
짱구는 설에 약속이 있어 음정으로 하산한다.

주능에 제법 눈이 쌓여 있어 잠시 등산로에서 벗어나 한겨울의 지리를 맘껏 느끼며 장터목을 향한다.

오늘은 장터목을 거쳐 천왕봉을 찍고 하봉을 거쳐 국골로 하산하는게 계획이다.
선비샘을 지나 강산형님과 동행한다. 생각보다 체력이 대단하시다. 말씀은 힘들다.힘들다 하시는데 산행하는 것을 보면 노련미가 넘친다고나 할까

멀리 세석산장이 보이고 천왕봉도 조망이 된다. 강산형님이 설경이 보시고는 기가 막히네 기가 막혀 하신다. 나는 쪼기듯 산행한 탓에 숨이 턱턱 막히는디...


장터목 산장 12:01
우여곡절끝에 장터목에 모여 중식을 해결한다.
대구에서 오신 미래형님은 세석에서 하산하시고, 일행은 시간이 많지 않아 서둘러 천왕봉으로 향한다.

이제 남은 인원은 6명 남자3명에 여자3명.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은 그야말로 진정한 겨울 지리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듯 힘겹고 아름답다. 벽소령에 장터목을 오는것과는 전혀다르게 제석봉을 향하는 길이 험난하기만 하다. 불어오는 거센바람이 얼굴에 부딪히면 따갑게 느껴진다.



 천왕봉에 오르니 간간히 가스가 끼어 흐릿하기는 했지만 그억시 이번산행의 벌미로 칠 정도로 조망도 날씨도 모두 양호했다.

 천왕봉을 뒤로 하고 중봉과 하봉을 향해 출발...


 여기서 부터는 본의 아니게 내가 러셀을 해야 했다. 당연히 일행의 리더가 내가 되어 있었다. 간간히 있는 앞선 사람들의 발자욱으로 힘들이지 않고 전진할수 있었지만 대부분은 몰아치는 눈보라로 길이 보이지 않아 눈길을 헤지며 전진할 수밖에 없었다.


러셀 초반이라 그런지 아님 자주 왔던 길이라 그런지 힘들이지 않고 전진할수 있었다.
어느새 설악이는 2만원짜리 오바트로우져바지로 갈아입으며 심설산행을 준비하고 있다.
-후미와 떨어지지 않게 속도를 조절하며 하봉을 향해 전진한다. 이곳의 경치는 주능의 설경과는 또다른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한껏 폼을 잡으며 사진을 찍으려 하지만 너무 추운 날씨탓에 디카마저 얼어붙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런데 아무리 진행해도 국골사거리간판이 나오질 않는다. 분명 길을 잘못들 리가 없다. 일행이 이곳을 어디 한두번 와봤나? 하지만 상황이 자꾸 이상한 방향으로 흐른다. 일행의 길은 전적으로 내가 책임지고 있어 내 선택이 중요하지않을수 없다. 일행이 잠시 쉬는 동안에도 길을 이리저리 살피며 생각을 해도 길을 잃은건 아닌데 자신이 없어진다.

선자,희영이 한테 자문을 구해보지만 이놈들은 그저 이길이 맞나? 아닌가? 긴것도 같고? 이러며 더 아리송하게 한다.

국골사거리가 나올시간이 지날수록 일행들은 점점 리더인 나를 못 믿어한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가을에 종신형님과 초암릉 겨울 산행에 대비해 허술했던 표식기리본를 보완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묶어놓은 산악회 리본이 보인다. 리본을 보니 반갑기도 하지만 불안했다.

분명 확실한 길에 묶어놓지 않았다. 고로 리본이 묶여 있다는 것은 이길이 이름도 떠올리기 싢은 초암릉.........

순간 앞에 펼쳐진 관경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조심스런 내 예상이 맞았다. 희영과 나는 상의끝에 초암릉으로 하산길을 결정했다. 어쩔수 없이 결정했다.

현재시각이 17:00
다시 길을 돌려 국골사거리로 내려가기엔 좀 늦은감이 있었다. 벌써 늦은 5시 곧날이 어두워지고 야간 심설산행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초암릉으로 결정된 이상 지체할수 없다. 일행이 채 도착하기전에 바위에 묶여있는 밧줄을 잡고 2~3미터직벽을 내려가기로 했다. 2~3미터 직벽 바로 밑은 경사가 급한 설면이라 자칫 위험할수 있어 조심스레 하산했다. 산행하면서 나는 절대 나무나 바위에 묶여있는 밧줄을 믿지않는다. 그러나 지금상황 밧줄없이는 하산이 불가능했다.

하는 수없이 가느다란 밧줄을 잡고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눈이 쌓여 미끄러운 그 직벽을 나는 부실한 밧줄이 끊어지는 바람에 단 1초만에 내려올수 있었다....추락했다..

왼쪽 어깨와 얼굴이 옆바위에 부딪쳤지만 다행히 머리에 큰 충격은 없는듯했다. 차갑게 얼어붙은 바위에 쓸린 얼굴이 정말 살을 에는 듯한 아픔으로 다가왔다.

후미 일행이 겁을 먹을지 싶어 외마디 비명도 없이 스틱을 먼저 던지고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배낭무게 탓인지 움직일수 없었다. 간신히 몸을 추켜세워 겨우 자세를 일으킬수 있었지만 그 충격은 예상외로 상당했다.

조금 있으니 희영이가 내려올준비를 한다. 하는수 없이 끊어진 밧줄이라도 조심스레 잡고 내려 오라며 밧줄을 던져졌다.

걱정과는 달리 다들 조심스레 내려온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지는 급경사면과 계속해서 밧줄없이는 하산이 불가능한 코스가 이어진다. 일행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자칫 사고라고 나지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불안한 하산을 계속한다.
-워낙에 험한 코스인지라 누구할것 없이 넘어지고 쓰러지고를 반복한다.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리기도 하구


강산형님과 희영 선자는 그래도 상태가 양호한편인데 설악이와 한백형이 좋지않아보인다. 내 상태도 최악이다.양쪽 스패츠가 문제를 일으켜 스패츠없이 러셀하고 있다.
등산화는 이미 물로 젖을때로 젖어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감각조차 느껴지질 않았다.

오히려 이길이 국골보다 더 빨리 하산할수 있다며 정확하지도 않은 정보로 일행을 격려할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늦은 6시에 일행은 촛대바위에 다다를수 있었다. 설악,선자,희영은 다들 낯익은 바위인지라 표정들이 밝아보였지만 묵묵히 뒤를 따르시던 강산형님은 자꾸 이것저것 확인을 하신다.

나는 눈에 익은 그 리본들을 설명하며 우리일행은 길을 잘찾아오고 있다고 이제 늦어도 2시간안에는 도착한다고 자신있게 말을 했다. 숨은 보물찾기를 하듯 가물가물 보이는 표시기리본을 쫒아 앞으로 전진을 계속했다. 내 산행속도가 빠른 탓도 있지만 후미의 설악이가 가다서다를 반복한다. 거의 두배의 시간이 걸리는 듯 조급하기만 하다.
이미 날은 어두워져 렌턴불빛에 의존해서 표시기리본을 찾아 헤맸다. 다행인 것이 종신형님이 달아놓은 표시기리본이 지나가는 길에 걸려있어 안심이 되었다.

8시면 하산이 가능하다고 했는데 시간은 8시를 훌쩍 넘기고 있다.그런데도 마을의 불빛은 찾을길이 없고 일행은 전부 지쳐 쓰러지기 일보직전이다. 참 이상했다 지난가을 표시기리본 작업을 할때는 40분어쩌고 했는데 이렇게 멀단말인가..길을 잘못들은일은 전혀 없었다. 지금도 산악회표시기가 눈에 띄는데....

산죽이 어거진 길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그만 표시기리본을 잘못 보는 바람에 거의 한시간동안을 왔던길을 되돌아왔다. 계속해서 더듬더듬 길을 찾아헤매지만 방금 멀리나마 보였던 마을 불빛도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또다시 산길을 표시기리본하나에 의존해 움직이고 있었다.

불행중 다행인 것이 어떤 세심한분이 표시기에 매직으로 지금 일행이 가는 방향이 어떤방향인지를 자세히 써놓아서 조금이나마 안심할수 있었다.

이제 시간은 10시을 지나고 있다.
모두들 탈진상태에 가까운 모습들을 하고 있고 일부에서는 조심스레 비박에 대해서 얘기가 오고가고 있는 모양이다. 적당한 장소가 있으면 비박하기로 했다. 그러나 나는 원칙적으로 비박은 하지 않는 것으로 마음 먹었고 길을 찾아나섰다.

참으로 답답할 노릇이다. 분명 길을 잃은건 아닌데...눈길 하산이래도 이렇게나 시간이 걸리나???후미의 설악과 한백형은 이제 거의 혼수상태다..얼마나 버틸수 있을지..
다행인 것이 선자는 거의 상태가 좋아보였고 희영이가 거의 15시간동안이나 무거운배낭을 매고 있는 탓에 목과 고개에 통증을 호소하고 있을뿐 그런데로 양호했다.강산형님도 힘들어하시기는 했지만 그런데로 어느정도의 산행은 가능해보였다.

거기 멀리 보이는 불빛이 환영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며 다시금 일행을 추켜세워 길을 나선다.
이제 발에 밟히는 눈도 많이 줄었다.마을의 불빛도 조금씩 선명하게 보이고 ...

이제시간은 늦은 12시를 훌쩍 넘겨 날짜마저 바꿔놓았다.
나는 어디서부터인가 어떤 산짐승인지는 몰라도 한 마리의 짐승발자욱을 따라 내려왔다.그래서 혹시 귀신에 홀린건 아닌지 내 자신마저 의심들기도 했다. 그래서 희영이와 선자에게 조심스레 “여기 아까 우리가 지나간 길 아냐??? 이상해 아까전에 지나간길이 맞는거 같은데??”

얼마를 걸었을까 드디어 희영이도 선자도 나도 낯이익은 풍경이 눈앞에 보인다. 이제 살았구나...

그렇게 해서도 이곳저곳에 벌목을 해서 20여분이면 계곡을 건널 수 있는데 1시간가량을 더 헤매서야 작년 초암릉 비박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겨울산행 19시간을 눈속에서 거의 휴식도 없이 헤매고 다닌 탓에 설악이와 한백형은 혼수상태에 가까운 중환자 몰골이고 희영이도 긴장이 풀어진 탓인지 고개를 떨군채 움직이지 않고 있다.


이렇게 해서 불행 중 다행으로 설연휴 지리산행을 무사히 마쳤다.
못 믿어 울 텐테도 잘 따라와 주신 강산형님,
모든 걸 내가 가는대로 가겠다던 한백형,
군소리 없이 산행을 조율해준 희영,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오히려 내 걱정을 해준 설악,
선배 랍 시구 항상 나를 믿어준 선자
오늘도 온몸에 뿌릴 파스나 사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