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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호도협,옥룡설산

중국 호도협 트레킹(4-2)-삼치구이

by 에코 임노욱 2013. 7. 10.

 

 

▸14:49 여강에 도착

▸15:00 여강고성 도착 - 여강고성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구경하다

▸21:35 흑룡담 공원 출발 - 걸어서 흑룡담 주차장까지 걸어서 이동, 마시지 다녀온 일행과 합류

▸22:04 숙소(山珍全酒店 Shanzhenbao Hotel)로 출발

▸22:17 숙소에 도착 - 밤늦게 호텔 근처 꼬치구이뷔페에서 단합행사

 

흑룡담공원 입구.

 

 

 

과거 - 지진이 일어나기 전, 연못에 물이 가득차 있었을 때의 모습

 

현재 - 2008년 지진 이후 물길이 바뀌어 지금은 연못에 보다시피 물이 없는 상태다.

 

■ 헤이룽탄공원[黑龍潭公園, Black Dragon Pool)

호수의 맑은 물에 비친 위룽쉐산[玉龍雪山(옥룡설산)]과 하늘의 모습이 멋진 장관을 이룬다. 공원 내에는 명나라 때 만들어진 오봉루(五鳳樓), 해탈림(解脫林)과 청대의 득월루(得月樓) 등 고대 나시족 건축물들이 있으며, 공원 북쪽 입구에는 나시족[納西族]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둥바[東巴]문화박물관이 있다. 둥바는 나시족 고유의 문자로 오늘날 유일하게 사용되는 순수 상형문자이다.

 

푸른 버드나무 고목과 누각, 정자 등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경관이 아름다우며, 매년 겨울에 매화꽃이 만발할 때는 매화축제가 열린다. 위룽쉐산에서 흘러내린 물은 예로부터 리장의 주요 수원이 되었으며 담수는 수천 갈래 물줄기로 갈라져 리장의 고성마을의 곳곳을 흐른다.

 

리장 고성에 도착했다. 본격적인 고성 구경에 앞서 먼저 흑룡담 쪽부터 구경을 시작했다. 2008년에 이쪽에 대규모 지진이 발생해서 땅밑의 물길이 바뀌어서 흑룡담에는 물 한 방울 없이 바짝 말라붙어 있어 흉물처럼 보인다. 안내판을 보니 이 연못은 건륭황제 2년(1737)에 만들어진 인공호수였다. 돌아와서 검색해 사진을 보니 연못은 주변의 수목과 멋지게 어울려 아름다움 그 자체였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지금은 볼 수가 없다.

 

고성을 향해 걸었다.

 


제3세대 지도자였던 강택민의 '세계문화유산 리장고성'이라는 휘호가 쓰여진 벽


 

흑룡담(Black Dragon Pool) ~ 리장 고성(Lijiang Old Town)

 

 

흑룡담공원의 중심지역 모습()

 

 

 

 

사랑을 맹세하는 징표(?)


 

■ 동양의 베니스 리장(麗江, Lijiang)

리장(麗江,Lijiang)은 1997년 유네스코(UNESCO)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동양의 베니스”로 만년설의 옥룡설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동파문화의 후예 나시족(納西族)들이 사는 유토피아로 상징되는 리장은 나시족의 심장부이면서 동파문화(東巴文化)의 발원지로 1,000여 년의 화려한 역사를 갖고 있다. 중국 한나라(BC 202~AD 220) 이전부터 중국 내륙 지역과 인도를 연결해준 실크로드, 차마고도(茶馬古道)로 이 길을 통해 오가는 상인들로 분주한 무역의 교차점이기도 했던 리장은 우뚝 솟은 옥룡설산과 그 뒤로 흐르는 금사강(今沙江) 때문에 스위스를 연상시키게 한다.

 

■ 리장고성(麗江古城, The Old Town of Lijiang)

①리장 고성(麗江古城), ②쓰촨(四川)의 랑중(閬中), ③산시(山西)의 핑야오(平遙), ④안후이(安徽)의 서셴(歙縣) : 중국에서 가장 잘 보존된 4대 고성의 하나이다.

리장고성은 800년전 남송 시대에 만들어졌다. 명나라, 청나라 시대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어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곳이다. 리장(麗江)은 운남성 중에서도 서북부 고원지대에 있는 아름다운 소읍으로 계림양쉬어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배낭여행자들의 성지이다. 이곳 중심부에는 1997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리장고성(麗江古城)이 시가지 남쪽 끝에 자리 잡고 있다.

고성은 고풍스러운 목조 가옥들이 100여 채 모여 독특한 군락을 이루고 있다. 고성은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길이 이어지는 교통 요충지인 쓰팡제(四方街)광장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골목길마다 반들반들하게 다듬어진 붉은 색 역암이 깔려 있고 곳곳에 매달려 있는 홍등이 밤이 되면 불을 밝혀 더욱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한다.

고성에 들어서자마자 여행객 눈길을 끄는 것은 수로다. 어느 거리, 어느 골목이나 빠짐없이 수로가 지나고 있다. 문 앞까지 맑은 물이 흘러 마치 운하에 둘러싸인 마을 같다. 그래서 리장은 “동방의 베니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처음 이 고성을 지을 때 수로를 먼저 만들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골목골목을 휘감아 도는 물줄기는 인근 옥룡설산의 만년설이 녹아 옥수채를 거쳐 흑룡담 공원에 모였다가 고성 안으로 여러 갈래 흘러들어 충의시장 쪽으로 빠져 나가는 깨끗한 물이다. 이 맑은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금붕어들도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 수로를 따라 총 300여 개 돌다리가 놓여 있다. 다리와 수로, 나무와 산, 거리와 집들이 어우러진다. 마을과 자연이 일체가 된 듯하다.

고성 중심에는 리장을 통치했던 이곳 토호인 목씨(木氏)들의 관청인 무푸(木府)가 재현되어 있다. 리장고성은 또한 성벽이 없는 성으로도 유명하다. 당시의 통치자가 木씨였는데 어떤 신하가 목(木)에 테두리를 두르면 곤(困)자로 변하며, 곤(困)자는 희망이 없는 뜻이어서 성을 쌓지 말 것을 권유했다고 하며, 그 후 800년간 이 성은 성벽을 쌓지 않은 채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

 

흑룡담공원의 중심 광장에서 사방가쪽으로 걸었다. 길 양쪽으로는 모두 상점들이다. 서울의 명동보다 오히려 더 화려해 보이기도 한다.( 사실은 명동에 가본지가 너무 오래돼서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른다.....ㅋ)  아무튼 눈이 휘둥그레 질 정도다.

고성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고성 내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관광객으로 붐비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관광객들의 대부분이 중국 사람들이다. 걷다보니 고성의 중심지역인 사방가에 도착했다. 사방가에서는 어디로든지 통하는 사통팔달의 중심이란다.

 


이 아저씨는 뭐하시는 분인고? 살아있는 매를 도구로 사진촬영을 하는 분이다.



사방가에서는 나시족들이 전통복장을 갖추고 주기적으로 전통 춤공연을 하고 있었다. 관광객들도 원하면 참여할 수 있다.

 



 

나시족의 상형문자(간판의 맨 위)

 

中国 南省 丽江市 古城區 櫻花(SAKURA) 美食廣場. 앵화의 앵자가 '앵두나무 앵(櫻)'자를 쓰는데 벚꽃이라고 부르는군요.

 

사방가는 옛날 보이차를 교환하던 장소였다고 한다. 보이차는 운남성의 특산물인데, 이곳 원주민들은 발효차가 아닌 생차를 즐겨 마신다고 했다. 일행들은 사방가에서 각자 헤어져 자유롭게 고성을 구경한 후에 이 장소에서 다시 모이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편이 갈린다. 일행 중 도청 직원들 가족은 그들리리 뭉쳐지고, 나머지 일행들은 함께 모여든다.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을.....

 

 

 

엽서가게에 들렀다. [구름모자]는 여행지에 가면 반드시 엽서를 구해서 가족이나 친구 등 보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엽서를 보낸다고 한다. 물론 엽서는 귀국한 후에 도착하지만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했다. 나도 엽서 한 장을 얻어서 아내에게 간단한 안부를 묻는 엽서를 우표를 부쳐 집으로 보냈다.


 

 

삼안정(三眼井, Sanyan Well). 평범한 우물은 아닌 것 같다. 안내판을 보니 세 개로 구분된 우물은 맨 윗쪽 물이 나오는 곳은 식수로, 두번째는 생활용수로, 마지막은 허드렛물로 쓰인다고 한다.

 

 

 

 

 

 

 

 길을 잘못 들었다. 고성이 한 곳에서 내려다 보이는 팔각정이 있는 곳을 향했으나 엉뚱한 곳으로 나오고 말았다. 다시 되돌아 왔다. 여행의 즐거움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포함되어 있지 않겠는가? 사방가로 되돌아 오던 도중 음식물을 파는 가게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이런 저런 음식들을 사서 맥주와 함께 맛본다.

중국 음식은 ①북경요리 ②사천요리 ③광동요리 가 유명하다고 한다. 북경의 대표적인 요리는 '오리요리'이고, 광동의 대표적인 요리는 '모기눈깔요리(박쥐가 모기를 잡아먹고 소화되지 않아서 배설된 모기의 눈알을 모아서 만든 요리)'라는 가이드의 설명이 있었다. 하긴 날아다니는 것 중 비행기를 빼고, 서있는 것 중 책상, 걸상 다리만을 빼고는 모든 것을 요리를 만들 수 있다는 중국인들이 아닌가?

또한 중국에서는 살아 생전에 못 해보고 죽는 것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한자를 죽을 때까지 배워도 다 못 배우고 죽는다. 둘째, 경치 좋은 곳이 너무 많아서 죽을 때까지 발품을 팔아 돌아다녀도 다 못 가보고 죽는다. 셋째, 음식의 종류가 너무나도 많아서 죽을 때까지 먹고 또 먹어도 다 못 먹어보고 죽는다.

 

 

 

메뚜기 요리(?). 맛이 고소해서 먹을만 했다.

 

 

 

 

다시 사방가로 돌아왔다. 고성 안내팜프렛이라도 있었으면 짧은 시간에 여러 곳을 가 볼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광장에는 여전히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우리 일행은 다시 고성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장소를 찾아 올라갔다. 한참 가다가 그리 높지는 않지만 고성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카페가 있어 그곳으로 들어갔다.

메뉴판을 보니 가격이 만만치 않다. 커피나 쥬스가 보통 35~40元이나 할 정도로 비싸다.  그런데 한 번 들어간 곳을 그냥 돌아나올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래서 전체 인원이 전부 주문을 하지 않고 몇 사람만 주문하기로 했다. 가격에 비해 맛은 형편이 없었다. 특히 쥬스 종류는 단맛도 과일 향도 거의 없는 맹물에 설탕을 타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갈 정도로 맛이 없었다.

 

카페에 앉아서 고성을 편하게 내려다 본 댓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곳에서 한참동안 앉아 있다가 다시 모이기로 한 약속시간에 늦지 않게 처음 출발했었던 사방가로 다시 돌아왔다.

 

 

 

 

 

 

 

 

 

 

 

 

사방가 옆에 자리잡은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櫻花屋金(벚꽃마을)이란 식당으로 일반적으로 SAKURA RESTURANT으로 널리 알려진 식당인데, 주인이 한국인 여자란다. 그래서인지 종업원의 유니폼도 퓨전 색동저고리를 입고 있었고, 요리도 김치와 무채 무침 등 한국음식이 곁들여 나왔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마사지를 받으러 가는 팀과 고성 구경을 계속하는 팀으로 나니었다. 나는 계속해서 고성에 머물러 있으면서 구경을 하는 팀에 남았다.

사방가를 떠나 중앙 광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櫻花屋金(벚꽃마을, SAKURA RESTURANT)

 

櫻花屋金(벚꽃마을, SAKURA RESTURANT)의 종업원들 복장이 이채롭다.


櫻花屋金(벚꽃마을, SAKURA RESTURANT)의 음식. 배추김치와 무우채 무침 등 한국음식이 반찬으로 나왔다.

 


퍼포먼스(?). 함께 사진을 찍으려면 돈을 내야 한다(?)

 


소수민족 전통복장과 스마트폰. 어울리나요?


 

 

운남성 보이차만 유명한 것이 아니라 최근 들어서는 커피도 알려지고 있단다.

 

 

 

 

 


흑룡담공원에서 단체 기념사진 [Photo by 에코]

 

 

[Photo by 에코]

 

사방가를 떠나 골목길을 따라 중심 광장까지 걸어왔다. 마사지팀은 떠나고 나머지 일행들은 광장 주변을 두리번 거린다. 난 근처의 벤취에 앉아 오가는 관광객들을 구경하면서 쉬고 있었다. 매년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중국. 발전하는 중국의 모습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들도 많은 사회문제를 안고 있을 것이다.

중국의 정치평론가인 상장위가 쓴 <시진핑과 조력자들>이라는 책에서 '중국이 안고 있는 문제는 사회의 역동성이 커지고 경제가 갈수록 복잡해지는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자유가 없다는 점이 향후 중국의 약점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정권이 유지이며, 이를 보장할 수 있는 수단은 경제의 발전이다. 중국의 정치체제가 무너질 것이라는 이야기는 10년 전부터 나왔지만 중국 정권은 아지까지도 무너지지 않았고 건재하기만 하다.'(p121)고 말하고 있다.

 

몇 년 전 중국에 왔을 때 후배로부터 들은 이야기와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외부에서 보면 중국 내부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이에 따른 빈부 격차가 심화되어 사회구성원간의 이질감 때문에 국가가 분열할 가능성이 높은 아닌가?' 라는 나의 질문에 중국에 살고 있던 친구는 '수 천년동안 이어져 오는 역대 중국 왕조 중 현재의 공산당만이 유일하게 인민들의 배고픔을 해결해줘서 그만큼 중국공산당에 대한 인민들의 충성도가 높기 때문에 외부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쉽게 분열되거나 와해되지 않을 것이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나그네가 중국이라는 남의 나라 걱정까지 굳이 해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빠르게 변모하는 중국사회를 보면서 왠지 위태로워 보이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가이드가 나타났다. 마사지팀이 마사지를 끝내고 돌아왔으니 함께 시내 숙소로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내 도로를 따라 10여분쯤 걸었을까? 처음 주차했던 흑룡담 입구의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면서 리장에서의 첫날밤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