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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자료

(중) 천년의 바이족 마을 뤄덩(諾鄧)

by 에코 임노욱 2013. 3. 12.
차마고도가 피워 낸 한 떨기 꽃 같은 마을

김중만 '뤄떵마을의 햇살'
▲김중만 '뤄덩마을의 햇살'


사진작가 김중만이 차마고도(茶馬古道)를 품고 있는 중국 윈난성을 다녀왔다. 중국 남서부 오지인 윈난성은 영국 작가 제임스 힐튼이 이상향으로 묘사했던 곳으로, 김중만은 그곳 사람들의 삶과 자연 풍광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부산파이낸셜뉴스 창간을 기념해 마련한 이번 특별기획에는 중국 전문가인 박현 난징사범대 명예교수가 동행해 글을 썼다.

해발 4000m가 훌쩍 넘는 다리 창산의 뒤쪽에 윈룽이라 불리는 작고 외진 곳이 있다. 아직은 관광객이 쉽게 찾아가지 않는 이곳에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바이족(白族)의 마을 뤄덩이 있다. 전기선을 비롯한 사소한 몇 가지만 빼면, 현대사회의 숨결을 느끼기가 어려운 그런 마을이다.

건너편 산 중턱에서 바라보면 마치 태극 모양처럼 생긴 마을이 있는데, 그 마을 어귀에서 무쇠로 엮은 줄에다 나무로 상판을 얹은 다리를 타고 계곡을 따라 10리쯤 들어가다 막다른 곳에 이르러 계곡의 이쪽저쪽이 맞붙을 즈음이면 나타나는 오유(烏有·이상향)의 땅, 계곡의 동쪽에 50여채가 남향해 앉았고, 건너편에 150여채가 동향해 앉아 있는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마을의 이름이 바로 뤄덩이다.

마을의 입구에는 지하수에 섞인 염분을 식염으로 만드는 제염장이 있고, 거기서 그리 멀지 않은 낮은 둔덕에 옛 마을공회 터가 있는데, 작은 차 몇 대쯤 댈 수 있는 작은 주차 공간만 눈감아 준다면, 이 마을은 살아 있는 천년의 화석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마을이 꽤 가파른 비탈에 기대어 있어서인지 마을의 비탈길은 모두 돌판으로 깔려 있는데, 이 돌들의 고색창연함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돌판 위로 아직 사람들보다 말이나 나귀, 돼지가 더 많이 다니는 것을 보면 그 마을의 시간이 딴곳과는 좀 다르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웃음도 없고 화냄도 없이 텅빈 듯 밝은 얼굴의 노인들, 서두름도 없고 게으름도 없는 그분들의 걸음걸이, 어디까지가 마을이고 어디부터가 자연인지 분간을 할 수 없는 동네의 경계, 담이 있으나 바람길과 물길을 가로막지 않는 가옥의 구조, 오랜 세월 탓에 잘 다듬은 보석보다 반들거리는 길바닥의 돌들, 천년의 세월 동안 얽히고설켜 어우러진 공간, 이런 말들은 뤄덩을 그려내려는 필자의 어설픈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필자가 이 마을을 처음 만난 것은 갑신년(2004년)이지만, 그리움을 이기지 못해 을유년(2005년)에만 두 번이나 더 그 외진 마을을 찾아 나섰고, 이번에는 김중만 사진작가와 함께 이 마을을 다시 찾았다. 그리고 올 때마다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마을의 높은 곳에 있는 작은 가게에서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점심을 들었다.

뤄떵 바이족의 점심
▲뤄덩 바이족의 점심


재래식 의사이기도 한 이 가게의 주인은 중년의 바이족 여인이다. 수령이 천년은 되었을 나무 그늘 아래 평상 두 개를 내다놓은 것이 전부인 작은 이 가게에서 마시는 약차는 이 마을을 스쳐간 천년의 바람처럼 향기롭기도 하고 뒤뜰에 마구 나뒹구는 골동품처럼 예스럽기도 하다.

이런 감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을 작가가 놓칠 리 없다. 마을의 비탈길을 오르면서 이미 바빴던 손길과 눈길이 다시 바쁘다. 갓난아기의 살결 같은 햇살이 얼마나 고왔던지, 어머니의 숨결 같은 바람이 얼마나 편안했던지, 작가는 웃통을 벗고 그것들을 즐기면서 신명나게 그림을 만들어간다.

그가 담아내는 그림 어디에도 햇살과 바람이 얹혔을 것이다. 와송(臥松)과 같은 약재들이 피어난 지붕을 담을 때에도, 천년 동안 햇살을 받아 낸 마을의 돌판길을 담을 때에도, 시큰둥하게 지나가는 짐 실은 조랑말이 그 주인과 더불어 그림으로 스며들 때에도, 깊은 주름 사이를 파고들지 못해 안달하는 착한 햇살이 노인의 얼굴을 어루만질 때에도, 고운 흙빛이 바람과 장난스러운 실랑이를 할 때도, 작가는 어김없이 셔터를 눌렀다.

위진(魏晋) 남북조 시기의 역사서에 이미 이 마을 이야기가 실렸으니 아무리 짧게 잡아도 1600년은 넘었을 이 마을에서 그동안 무엇이 바뀌었을지 찾아내는 것도 쉽지는 않다. 여러 세대를 거치며 길도 수리되고 집도 고쳐 지었겠지만, 천년 전의 모습은 그 흔적을 지울 수 없을 만큼 뚜렷하다. 차마고도를 타고 이루어진 문화의 완성도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만하다.

지금은 더러 쇠락한 집들이 보이지만, 건축물의 구조들로 추측해본다면 단 한 집도 특별하게 가난하지는 않았던 듯하다. 마을이 공동체처럼 운영되었다고 하니 더욱 그럴 것이라 짐작된다. 차마고도가 전해준 문화적 원칙, 그 어떤 것도 수용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원칙은 이 마을의 풍경이 자연과도 하나로 융화되도록 만들었고, 멀리서 흘러온 한 가구의 다른 종족 사람들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작가도 이 마을에 배인 차마고도의 융합성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카메라는 융합과 조화를 드러낼 수 있는 모든 장면들을 담아내고 있었다. 텅 빈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 깊은 곳에서, 담과 길바닥이 분간 없이 이어진 골목길에서, 마을과 자연의 애매한 경계에서, 사람보다는 말이 편하게 다니도록 안배된 돌계단의 높이에서, 작가는 융합을 이뤄낸 차마고도의 깊은 맛을 담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이 아름다운 뤄덩 마을을 찾을 때마다 낮은 소리로 이야기한다.

"하느님, 저를 이 마을에 오게 하셔서 감사드립니다."

아마 작가도 그랬으리라 생각한다. 차마고도가 피워낸 한 떨기 꽃, 뤄덩 마을! 그 마을을 아직까지 지키고 있는 바이족의 노인들! 작가의 눈길과 만난 풍경이 우리가 허물어낼 대상이 아니길 바랄 따름이다.

하나 이제 어쩌랴. 작가나 필자는 모두 나그네, 어둠에 잠기는 뤄덩을 뒤로 하고 발길을 돌린다. 오후의 피로를 달래준 뤄덩 마을의 약차 맛이 여전히 입 안에 감돌지만, 어색하게나마 웃으면서 나그네들을 맞이해주고 신기한 듯 작가 일행을 조심스러운 눈길로 쫓아다니던 아이들의 눈길, 쇠로 엮은 다리가 다시 휘청인다. 그래, 이제 이런 마을을 이루어낸 문화의 근거지인 옛 왕국, 아니 옛 민국(民國)의 수도를 찾아 발길을 돌릴 수밖에….

aragaby@hanmail.net 박현 난징사범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