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황제의 딸이었으나
살아있다는 것을 숨겨야 했던 서러운 인생!
한국 역사소설계의 거두 유주현이 이문용 옹주의 삶을 역사에 대한 깊은 통찰력으로 밀도 있게 그려낸 소설. 1972년 잡지 〈사상계〉에 처음 연재되어 1975년 '동화출판공사'와 1978년 '경미문화사'에서 출간되었던 『황녀』가, 2010년 전 2권으로 묶여 재출간되었다.
고종황제가 환갑이 되던 해 태어나 더할 수 없이 귀하게 자란 덕혜옹주와 달리, 태어나자마자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숨겨야 했던 또 한 명의 옹주 이문용. 문용은 덕혜보다 십여 년 전인 1900년, 고종이 총애하던 상궁 염씨에게서 태어났다. 그러나 어머니 염 상궁이 억울하게 세상을 떠나자, 문용은 궁중의 실세인 귀빈 엄씨를 피해 황실에서 주선한 양부모와 함께 숨어 살게 된다. 양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탐욕적인 성격의 유모가 문용 몫의 재산을 팔아 도망쳐버리는 바람에, 옹주는 졸지에 걸인 신세가 된다. 신분도 모른 채 비참하게 떠돌던 문용은 어머니의 동료였던 임 상궁을 만나 비로소 자신이 황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문용은 임 상궁과 함께 살며 신교육을 받고 당대 명문거족인 김한규의 아들인 김희진과 결혼하지만, 남편과 유복자인 외아들이 잇달아 유명을 달리한다.
온 나라를 태풍 속으로 몰아치던 경술국치와 한국전쟁을 겪는 동안 문용은 또다시 신분을 감춘 채 세상을 떠돈다. 이후 그녀는 사상범이란 죄목으로 10여 년의 수인 생활을 하게 된다. 이 시기 박정희 정부는 그녀가 황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대통령의 지시로 호적이 만들어져 법률적 복권이 이루어진다.
문용옹주의 삶은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 그 자체였다. 저자는 자칫 작위적 해석으로 부자연스러운 모자이크가 되기 쉬운 역사소설의 함정을 피하여, 문용옹주의 숨결 속에 역사가 자연스럽게 녹아 흐르게 하는 서술 방식을 택함으로써 강력한 흡인력을 갖게 한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품격을 유지했던 그녀의 빛나는 삶은, 소설 속에서 강한 긍정적 힘이 되어 나타나고 있다. 경술국치 100년, 대한민국이 흠뻑 빠진 '덕혜옹주'와 비운의 황녀 '문용옹주'의 삶을 비교해보는 것도 소설을 읽는 또다른 재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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