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가
이광재의 신작 장편 역사소설
아직 끝나지 않은 왜란의 근본을 따져 묻는다.
간결하고 당당한 문체로 내공을 발휘하는 작가의 시선은
조선에서의 모든 전쟁은 국제전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일본의 침략으로만 좁혀졌던 임진년, 정유년의 왜란이
조선과 일본, 명이 뒤엉킨 국제대전이었다는 인식에서 출발해
명의 멸망과 청나라 건국의 계기가 된 사르후 전투까지
조선이 관여된 동북아 국제대전의 본질을 따라간다.
작가의 이런 인식은 우리가 처한 현재상황을 관통한다.
고조부가 계유정란을 계기로 낙향한 이래 함평 이씨 가문에게 있어 권력은 환멸의 대상이었다. 조부가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은거한 일이며 양부 억영이 사마시에 합격하고도 잠적한 일이 모두 증거였다. 이유(李瑜)를 비롯해 형제들이 출사의 뜻을 접고 향촌에 박힌 연유도 그런 가풍 때문이었다.
이유의 부인 부안 김씨가 시집올 때 데려온 몸종이 아이를 낳았는데, 이름이 거북손이었다. 눈치가 빠르고 영민한데다 몸놀림이 비범해 이유는 거북손이를 늘 곁에 두었다. 거북손이가 개암사 스님 월곡에게서 일 년 남짓 검술을 배우게 된 것도 이유의 배려 덕분이었다.
거북손이는 두 번의 검술 대결을 펼지는데 한 번은 간자로 붙잡힌 일본 검객 마사나리와의 그것이었고, 한 번은 아녀자들이 일하던 아중마을에서의 그것이었다. 마사나리와의 대결은 서로를 살리기 위해, 아중마을의 대결은 서로를 제압하기 위해 검들이 불을 뿜었다. 마사나리는 결국 항왜의 의지로 거북손이와 한 집에 머물게 되었다. 아중마을의 일본 장수는 거북손이의 환도에 목숨을 잃었다.
왜군이 부산포에 상륙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번에는 임진년 때 빠뜨렸던 전라도 쪽으로 군세를 몰아갈 예정이라는 소문도 뒤따랐다. 이유는 조운선을 마련해 쌀을 싣고 의주로 파천한 임금을 향해 떠난다. 의주에서 여진족이자 조선인인 사내를 만나 가히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데, 사유와 의식이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어느 날 이유는 거북손이를 불러 노비문서를 직접 태우게 하고, 홍걸이라는 이름을 내린다. 노비가 아니라 아들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이었고, 거북손이는 선처에 오열한다. 이유의 이런 행동은 마치 자신의 운명을 아는 듯한 모습이었다.
마침내 이유와 의병들은 호치에서 왜군에 맞설 준비를 서두른다. 호치에서 의병들은 대부분 절멸하고, 이유와 일행은 개암사 쪽으로 피신하는데 초입에서 왜군들과 맞닥뜨린다. 그곳에서 거북손이는 부상을 당하고 이유는 옆구리가 왜병의 창에 찔려 절명한다. 이후 거북손이, 아니 이홍걸은 사르후 전투에 조선군인으로 참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