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바라기 덕태산
-구름모자-
1. 일시 : 2004.11.27~28
2. 장소 : 덕태산
3. 코스 : 오계치-삿갓봉-덕태산-백운
4. 참석 : 임노욱. 전종신, 김병옥, 미옥, 봉조, 선자
5. 산행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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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오계치의 밤입니다.
보름이 어제였으니 달의 둥글기가 호박(琥珀)처럼 예쁩니다. 이런 달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것도 꽤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난 시절엔 이곳에서 별바라기나 하자 했었지요. 그런데 오늘은 별이 없습니다. 그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구름의 심술 때문이지요. 아무리 자연조건이 만들어낸 조화라 할지라도 밤하늘에 별이 없는 것은 저 아랫녘에서 별을 보지 못하고 살았던 도시의 슬픔을 예까지 들고 온 것 같아 허전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달만은 없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구름과 숨바꼭질을 하고 있습니다. 어찌나 빠른 걸음인지 숨었다가 또 나타나고, 나타났다 싶으면 곧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서양가수가 뒷걸음으로 춤을 추며 미끄러져 가는 모습과 흡사합니다.
그런데 왜 구름은 별도 없는 이 밤에 달마저 덮으려 할까요? 그것이 심술궂은 장난일까요? 아니면 허물을 감춰주려는 보은일까요?
달이 저렇게 구름을 걷어내는 걸 보면 구름의 장난에 대한 몸부림인 것 같고, 하얀 얼굴이 불그스레해진 걸보면 감춰야 할 일도 있는 것 같습니다.
참 우등불엔 고기가 익고 있습니다. 우리가 산에서 즐겨먹던 것이지요.
호일에 올려놓고 생강과 마늘을 넣은 다음 소금을 살짝 뿌려 김이 새지 않게 꼼꼼하게 말은 후 숯불 속에 던져 넣으면 나무향기마저 어울어져 오묘한 맛이 절절 흐르죠. 사실 오늘 같은 밤이면 저 달 하나만으로도 밤새도록 안주 걱정 없이 지샐 수도 있었던 시절이 있었지요. 거기엔 이태백이나 도연명이 없어도 권주가가 절로 나오고, 삶까지도 제법 철학적 의미까지 부여하며 세상을 성토하던 때가 있었지요.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이곳의 매력은 해발 870을 한달음에 올라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도시와 가까운 곳에서 한달음에 이렇게 깊은 산중으로 달려와 텐팅을 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우등불 주위에 둘러앉자 술 한 잔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우리들만이 가지고 있는 혜택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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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처음 찾았던 때를 기억하십니까? 우리가 처음 금남호남정맥을 시작하면서 차고개(또는 자고개, 자꾸자꾸재)에서 서구리재(또는 서구이치, 서울재), 오계치를 넘어 신광치에 이르는 구간을 끊으면서 처음 인연을 맺었었지요. 그 후 금남정맥을 두 번, 호남정맥을 다시 두 번 더 접했으니 정맥만도 다섯 번째요, 이 부근의 덕태산, 선각산, 팔공산을 찾은 것이 여러 차례니 이미 이십 여 번은 족히 다녀간 듯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곳을 다시 오게 된 것은 별바라기 때문이었지요. 아쉽게도 지금은 구름의 심술로 그때의 정취는 느낄 수가 없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별이 없다 해도 크게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 구름만 걷히면 그 별은 거기 그대로 있을 테니까 말이죠.
아마도 우리가 다시 별바라기를 약속했던 때도 초겨울 이때쯤 이었을 겁니다. 그날은 정말 하늘에서 별이 뚝뚝 떨어질 듯하였지요. 흐르는 것은 물이 아니라, 흐르는 것은 세월만이 아니라 하늘에 은하수도 있음을 그때 알았었지요. 산에서의 별이야 자주 접하는 일이지만 우린 그때마다 이곳을 이야기하곤 했었지요. 그건 그때의 인상이 깊기도 했지만 아마도 도시의 생태에 젖어 별을 보는 일조차 새로웠기 때문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뿐입니까? 이 능선은 바로 금강과 섬진강의 발원지가 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 발원지에 대한 논란이 재미있습니다. 장수에는 그 유명한 수분재라는 곳이 있지요. 이름 하여 물가름이재, 또는 물나눔이재라고 하는데, 옛사람들은 이 재에 있는 마을을 물뿌랭이마을이라 하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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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의 발원지는 [동국여지승람]에는 속리산, 덕유산 중모현으로, [택리지]는 덕유산과 마이산, [성호사설]은 덕유산, [대동지지]에는 마이산 동봉이라고 적고 있고, 현대 문헌으로는 [새한글사전]에는 전북 장수군, [한국지명 총람]에는 신무산 수분이 고개로 표기되어 있음을 볼 때 근세에 와서야 제대로 그 뿌리가 정립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신무산과 사두봉 사이에 가로놓인 재가 바로 수분재인데, 이 재 서편에 있는 신무산 기슭에 밥내재가 있고 그 아래에 있는 샘이라하여 예전엔 밥내샘 이라 하였으나 지금은 뜬봉샘 이란 이름이 붙은 샘이지요. 일명 뜸봉샘 이라고도 하는데 전자는 이 지방의 재앙을 막고 풍년을 기원하기 위하여 산에 군데군데 뜸을 뜨듯이 봉화를 올렸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고, 후자는 이성계가 이곳을 지나다가 목이 말라 샘물을 찾으니 봉황 한마리가 산자락을 차고 날며 영룡한 무지개가 떠올라 샘을 찾을 수 있었다는 유래가 전해지고 있지만 지금은 샘 앞에 씌여진 표지판 때문인지 뜬봉샘 으로 굳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제법 찾아오는 순래객들이 있어 등산로와 주변을 정비해 놓았지요. 하긴 그 샘의 모산이 신무산(神舞山), 즉 ‘신이 춤을 춘다’는 산이니 그 의미가 일리 있는 듯 느껴집니다.
그런데 요는 일부 장수사람들이 수분재에 더 깊은 의미 부여하고자 섬진강의 발원지도 이곳이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그러나 그 말 은 틀린 것 같습니다. 수분재 남쪽이 섬진강 수계는 맞으나 그 물은 장수군 번암면을 지나 남원을 관통하는 요천으로 흘러들고, 곡성에서 적성강과 합류하여 비로소 섬진 본류를 이루는 큰 지류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섬진강의 발원은 옛 고서인 [택리지]나 [연려실기술]에서는 마이산으로 보았고, 일제 강점기인 1918년 [조선지지자료]에는 전북 진안군 우곡리 부귀산에서 발원한다고 적혀 있으나 이 자료들은 지도가 명확하지 않고 모두 발품으로 확인해야 했던 시절의 자료들이어서 지금의 자료들로 살펴보면 모두 틀린 자료들입니다.
내가 알고 있던 섬진강의 발원지는 예전에 덕태산 부근의 쇠꼬샘으로 알고 있었으나, 지금은 그 이름마저 사라져 버리고, 최근 모 단체의 주관으로 전북의 5대강 찾기를 시작하면서 일명 천상데미산 이라 명명한 서쪽기슭 아래에 있는 데미샘을 섬진강의 발원지라 부르게 되었지요.
그런데 아마도 이 샘의 이름은 최근에 지어진 이름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데미란 우리지역의 고어로 원어는 더미이고, 덤이 늘어진 말이기도 하지요. 이는 곧 물건이 켜켜이 쌓여진 모양을 가르키기도 하고, 일상에서는 사는 것 보다 더 얹져 주는 것을 말하기도 하며, 보이는 현상으로만 따지면 덤은 적게는 산위에 봉긋 솟은 무덤에 쓰이기도 하고, 더미는 흔히 쓰는 용어로 장작더미, 흙더미와 같이 평지보다 높게 쌓여진 모양을 말하기도 합니다. 또한 크게는 산위에 바위들이 켜켜이 쌓여있는 모양을 누룩덤 이라 부르기도 하고, 사람이 오르지 못할 만치 험한 곳을 독수리나 매가 살 수 있는 곳이라 하여 수리덤 이라 부르는 곳도 있지요.
그런데 이 샘을 데미샘이라 부른데는 지도상 장수 쪽에 있는 골짜기에 천상데미란 한글과 한문이 혼용된 지명이 하나 보이는데 이 명칭을 이 샘이 위치한 무명 산봉우리에 옮겨 붙이면서 이곳을 데미샘이라 붙인 듯 합니다. 산 이름을 그대로 풀이하면 ‘하늘 위로 솟아오른 봉우리’ 또는 하늘 위로 올라가는 봉우리‘라는 뜻이니 산 이름으로서의 제목도 틀리진 않는 듯하지만 그 지능에 있는 산의 이름이 봉황산이라 칭하는 걸 보면, 봉황, 천상, 뜬봉, 신무, 용계, 용머리, 와룡, 신광 등의 지명이 모두 한 전설에서 나온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풍수적인 해석으로 시작의 의미를 부여하는 지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생각이고, 현재 내 능력으로서는 그러한 연관성들에 대하여 아는바가 없습니다. 또한 적은 지식의 내 능력으로는 연구해볼 엄두도 나질 않습니다.
또한 혹자는 샘 주위가 너덜지대여서 돌무더기 또는 돌더미로 되어 있으니 이 곳 사투리로 무더기를 무데기, 더미를 데미로 부르는 데서 비롯한 것이라 하나, 이 역시 뿌리 없이 새로 생긴 이름에 대한 혼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만 확실한 것 하나는 우리나라 하천 관리기관인 건설교통부에서 2000년 5월 이 계곡(일명 상추막이골)을 최장 발원지로 발표했으니 섬진강의 발원지는 맞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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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처음 금남호남정맥을 시작한 것은 고집스레 능선만을 걷고자 한 것은 아니었지요. 그것은 우리 선현들이 역사적 자료가 부실하던 그 시절에 그어 놓은 산줄기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보기 위함이요. 그 줄기를 경계로 나뉘는 강과 생활, 문화, 삶의 방식, 행동거지를 알아보고자 함이었지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강의 원뿌리를 찾아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긴 하지만, 꼭 그 하나의 점에다 모든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어찌 보면 인간의 욕심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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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등불은 아직도 나무들의 마지막 생명의 신음소리를 지르며 우럭우럭 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생처럼 격렬하게 말이죠.
축제의 밤은 아니지만 이런 날은 목청껏 노래도 불러보고 싶고, 한없이 취해보고도 싶고, 산우들과 어깨를 걸고 우등불 주위를 빙빙 돌며 신나게 춤도 춰보고 싶고, 사랑하는 연인과 깨어나지 않아도 좋을 깊은 잠자리를 들어보고도 싶은 날입니다.
무야(戊夜)가 넘었습니다. 그저 맘에 있는 예기 몇 마디 주고받았을 뿐인데 벌써 밤보다는 새벽이 더 가깝습니다. 심술 맞은 구름은 이제야 오계치 너머로 빠꼼이 하늘을 열어 한줄기 은하수를 쏟아냅니다. 그러나 그 모양은 마치 불가능에서 한줄기 빛을 찾아 낸 것 같아 고맙기까지 합니다.
우리네 세상사가 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때론 감당하지 못할 고난이 찾아와도 언제나 무소의 뿔처럼 홀로 헤쳐 나가야하는 거지요. 헤쳐 나가지 않으면 그만큼 늦어지고 늦어지는 만큼 도태되기 때문이지요. 세파에 찌들어 나도 모르게 변질된 우리의 희망을 저 한줄기 은하수에 띄워 보냅시다.
보이는 하늘은 아득한 구름이 덮여 있어도 그 위의 대기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넓이 이상의 맑은 하늘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곧 희망이 있다는 뜻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세상에만 매달리지 말고 우리의 소중한 꿈과 희망을 위하여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갑시다.
보다 더 넓은 마음으로 말입니다.
2004년 가을 오계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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